꺼져버린 재 속에서 불씨를 살리다
메리 웨슬리(Mary Wesley, 본명 Mary Aline Siepmann).
영국 문학사에서 그녀는 '늦은 시작'과 '해방'의 상징이지만 국내에서 그녀의 이름은 매우 낯설다. 나 또한 그녀의 소설을 읽었음에도 작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고즈넉한 밤, 투병에 지쳐 누운 채 무의식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틀기 전까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들은 후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삶을 지탱하는 중심축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1912년 영국 버크셔에서 태어난 웨슬리는 가족 안에서 늘 소외된 존재로 살아야 했다. 감정적으로 냉담했던 어머니와 군인이었던 아버지로 시작된, 차가운 가정과 잦은 이사는 그녀의 삶에서 ‘따뜻한 사랑’이란 단어를 지워버렸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이’라는 인식이 자아의 중심부에 스며든 이유다.
청년기도 쉽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사회적 격동이 겹치는 시절을 통과하던 시기. 독립된 여성을 꿈꾸던 그녀에게 사회적 규범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겪었던 한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 이 모든 요소가 메리 웨슬리의 내면에 복잡한 상실감과 불안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삶이 극적으로 무너진 건 두 번째 남편 에릭 지프만의 죽음 이후였다. 당시 메리 웨슬리의 나이 59세. 부모는 그녀에게만 유산 상속을 포기했고, 노후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자녀는 아직 학생인 상태. 개인의 결핍 앞에 세상은 비정했고, 메리 웨슬리는 생존을 위한 시험에 부딪혔다.
고통의 잔해가 남긴 틈바구니에서 그녀의 선택은 펜을 드는 일. 사실 그녀는 1960년대 초 이미 아동문학 두 권을 출간한 작가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시 펜을 들어도 성공하리라 보장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 그럼에도 “망했다”는 절규보다 “쓸 수밖에 없다”는 간절함이 펜촉을 움직였다.
이후 1983년, 메리 웨슬리는 71세의 나이로 『Jumping the Queue』(한국 서적명 『마지막 날의 시작』)를 세상에 내놓았다. 자살을 결심한 여성과 남겨진 가족을 중심으로 삶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욕망과 상실을 냉정하게 그려낸 작품. 그녀는 죽음과 상실, 희망과 체념, 노년의 사랑과 유머를 블랙코미디처럼 엮어내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이후 웨슬리의 펜촉은 마를 새가 없었다. 『The Camomile Lawn』, 『Harnessing Peacocks』, 『A Sensible Life』 등 연작을 통해 전후 영국의 변화, 가족 해체, 나이 든 여성의 욕망과 자유, 사회적 금기를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에게 ‘Jane Austen plus sex’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그녀는 노년, 성, 죽음, 근친상간, 자살 등 당시 문단과 사회가 회피하던 소재를 솔직하고도 품위 있게 풀어냈다. 늦은 데뷔는 오히려 문학적 자유와 해방의 계기가 되었으며, 그 안에 개인의 상처와 시대의 금기가 모두 녹아 있었다.
웨슬리 소설의 미덕은 낭만의 부정과 잔여로 남은 삶을 향한 집착적인 묘사다. 등장인물들은 상실의 잔해 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재건하고, 겉돌거나 이탈하면서도 중심으로 돌아온다. 독자들은 깨닫는다. ‘폐허 속에도 반드시 재생의 불씨가 있다’는 사실을. 삶의 발자취는 늘 실패의 퇴적층 위에 놓이나 새로운 벽돌을 쌓으면 그만이라는 통찰이다.
죽음 앞에서도 그녀는 초연하고 담담하며 유머러스했다. 암 투병 중 직접 주문한 붉은 관을 커피 테이블로 사용하고, 잡지 기사에선 그 관 안에 앉아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삶의 각종 굴레 앞에서 초연함과 유머를 잃지 않은 태도가 노년의 여유로움을 만든 것일까. 2002년, 메리 웨슬리는 향년 90세의 나이에 커피 테이블로 쓰던 붉은 관에 안식했다.
메리 웨슬리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자기 삶의 잔해 위에서 주저 없이 새 구조를 설계하려는 의지다. 무너지기를 반복하며 쌓인 시간의 단면은 그녀에게도, 우리에게도 끝내 재건의 동기가 된다. 외로움과 결핍, 폐허와 실패, 상실과 단절의 기억. 이어지는 붕괴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기초를 쌓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임을 그녀는 증언했다.
삶이 어느 순간 낱낱이 부서질 때 인간은 붕괴의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절망이 몰려올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메리 웨슬리가 증명했듯, 성장의 진실은 바로 그 실패와 해체를 통과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붕괴 앞에 멈출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폐허 위에 자신의 구조물을 다시 세워 가야만 한다. 갈라진 틈을 타고 새로 돋아나는 새싹처럼, 그리고 꺼진 재 속에서 일어나는 재생의 불씨처럼. 붕괴는 각자의 용기와 기초를 환기하고 다음 자리로 이끄는 도화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