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앞에서 욕망을 되살리는 법
중년이란 타이틀은 삶의 새로운 폐허다. 특히 40세의 굴레가 강력하다. 처음으로 중년이란 이름표를 붙이는 나이. 젊음의 외투를 벗고 도전과 새로움에 대한 불안감을 잉태한다. 유지와 익숙함이란 사회의 문법에 자신을 맞추고, 반복되는 역할에 욕망을 파묻는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양상에 실존이란 주제를 상실하기도 한다.
박완서가 밤이 오면 원고지를 펼치고 연필을 들었던 이유였다. 낮에는 다섯 아이의 엄마와 전업주부라는 명찰을 달고 살던 시기. 창문 밖 어둠만이 내면의 욕망을 현실로 끌어내는 신호가 됐다. ‘이대로 살면 내가 정말 사라질 것 같다’는 실존적 간절함은 어둠 속 불빛을 밝혔다. 그녀는 과거를 해체하고 현실의 폐허 위에 단단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오래 묵은 슬픔, 상실의 진동, 반복된 침묵은 강물처럼 터져 최초의 집필로 승화했다. 가슴에 묻어둔 서사를 터뜨렸기에 습작 없이 단숨에 완성했던 것. 젊은 시절 겪은 상처가 현실의 폐허를 메우는 에너지로 바뀌었다.
1970년 <여성동아> 편집실은 동요했다. 당선작 『나목』의 작품성은 놀라웠지만 경력 없는 신인을 향한 의심이 불거졌다. 기자가 박완서의 집을 찾았다. 그녀는 소설을 쓰며 적었던 메모를 내밀었다. 수없이 끄적였던 기록이 당선의 근거가 됐다. 의심과 증명이란 두 축을 딛고서야 박완서라는 이름에 ‘작가’ 명칭을 새길 수 있었다.
박완서의 등단은 사회적 시간표를 뒤흔드는 사건에 가까웠다. ‘30세 이전 등단’이라는 문학계 내부의 암묵적 규칙이 무너졌다. 세월 속에 흩어졌던 작가 지망생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꽃이 떠올랐다. 그녀의 등장이 만든 균열. 균열의 틈을 타고 숨어 있던 실력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작가에게 늦은 등단은 불행보다 축복인지 모른다. 박완서의 작품이 그 증거다. 그녀에게 창작은 지난 시간에 대한 집요한 자기 해부와 재건의 연속이었다. 주요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는 대체로 ‘상실의 재건축’에 가까웠다. 축적된 상실 없이 새로운 건축은 일어나지 않는다. 박완서의 늦은 출발은 창조의 바탕이 됐고, 글이라는 벽돌에 깊이를 더했다.
실제로 박완서는 인터뷰마다 “작가 아닌 시절이 있었기에 쓸 거리가 많았다”라고 반복한다. “작가 하면서 쓸거리를 고민한 적 없다”는 말은 작가 아닌 시절이 축복이었음을 보여준다. 세상이 늦었다고 규정한 시간, 그녀는 더 많은 의미를 쌓아왔다.
출발선이 늦었던 박완서는 40년 간 장편소설 15편, 단편소설 100여 편, 수필 600여 편을 낳았다. 노년에도 손을 멈추지 않았고, 실존에 대한 성찰을 놓지 않았다. 노년의 시기, 그녀는 외로움과 자기 치유를 글에 담았다. 삶의 종장에 치달아도 끝없는 자기 해부가 낳은 결과다.
우리는 박완서의 기록에서 자신감을 얻는다. 공표된 젊음은 전체 삶을 규정할 수 없고, 중년이란 구분선이 벽으로 작용할 수 없다. 절실한 성찰과 자기 몰입의 집요함이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다. 사회적 합의와 시간표라는 장애물 앞에 머뭇거릴 필요도 없다. 자기표현의 기회는 언제든 열려 있으며, 모든 건 선택의 문제다.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이 더 보이는 시대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존재의 필요성을 침범하고 망설임의 순간을 늘려 놨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세상이 ‘느려 보이는’ 자신을 자책하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삶의 벽 앞에서 주저하는 이유다. 당연하다. 인간이기에 미래를 걱정하고 삶의 위치를 반성한다.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멈출 수 없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찰과 자책으로 물든 삶의 단면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박완서의 언어를 살펴보자. 누구나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앞선 자의 증언. 폐허라는 단어 앞에서 욕망을 재건하는 힘. 늦깎이 도전자의 윤리로 삼아 움직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