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의 한가운데서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바라보는 전기차 경쟁

by Eins

전기차 경쟁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동차 산업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독일 자동차 회사 내부에서 이 변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건 단순한 기술 전환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산업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과정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전기차 시장의 출발점은 분명했다. 테슬라가 전기차를 ‘환경을 위한 대안’이 아니라 ‘더 나은 자동차’로 인식시키면서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 거의 모든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전동화 전략을 발표했고, 수십 년 동안 내연기관 기술로 성장해 온 독일 자동차 기업들도 빠르게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향을 정하는 것과 실제로 전환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온 회사들에게 전동화는 그냥 엔진을 배터리로 교체하는 일이 아니었다. 차량 구조, 공급망, 개발 조직, 생산 방식, 서비스 체계까지 모든 것이 동시에 바뀌어야 했다. 특히 배터리와 소프트웨어라는 두 핵심 영역에서, 기존 자동차 회사들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성능과 원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품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들은 이 기술을 내부에서 쌓아온 역사가 길지 않다. 소프트웨어 쪽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해보니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영역이었다. 자체 운영체제와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며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지만, 개발 지연과 품질 문제는 반복됐다. 결국 일부 제조사들은 미국이나 중국 기업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채택하거나 협력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자동차 산업 내부에는 불편한 질문이 생겨났다. 자동차 회사가 더 이상 소프트웨어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드웨어, 즉 기계를 만드는 역량은 여전히 강점이지만, 차량 기술의 핵심이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면서 경쟁의 중심도 함께 이동하고 있다.


개발 현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경쟁사의 새로운 전기차 모델이 발표될 때마다 내부 목표와 계획이 수정되는 일이 반복된다. 배터리 용량, 주행거리, 충전 속도, 가격 전략 같은 지표들이 경쟁 모델에 맞춰 재조정되다 보니,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방향이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당연한 움직임이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안에는 피로감과 혼란이 쌓여간다.


‘품질’에 대한 인식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핵심은 오랫동안 높은 완성도와 소재 품질이었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고, 배터리 비용이 차량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그 결과, 일부 모델에서는 실내 소재와 마감 품질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지켜온 차별성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시장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도로에서 중국 브랜드 차량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지금은 다르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쟁력 있는 가격과 빠른 개발 속도를 앞세워 유럽 시장 진입을 계속 넓히고 있고, 어느 순간부터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수가 유럽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판매량 변화가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힘의 균형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편, 시장 분위기는 최근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초기 전기차 성장세가 예상보다 주춤하면서 ‘전기차 캐즘’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충전 인프라 부족, 높은 가격, 잔존가치에 대한 불안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전동화의 흐름 자체가 되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유럽의 환경 규제는 여전히 강화되는 방향이고, 최근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유가상승은 다시 전기차의 경제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독일 정부도 전기차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 정책을 재논의하거나 일부 인센티브를 다시 도입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결국 지금의 전기차 경쟁은, 누가 더 빠른 차를 만드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고, 소프트웨어 주도권을 가지며, 동시에 브랜드 정체성과 수익성을 지켜낼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완벽한 기계 공학 위에 세워진 독일 자동차 산업은 지금 가장 어려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된 시대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어느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략은 계속 수정되고 있고, 전동화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


전기차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다만 완전한 승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음엔 이 전동화로 가는 길에서 결국 이탈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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