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으로서도 납세자로서도 많이 억울한 내돈내산.
다가올 4월에는 보궐 선거가 있다. 후보들의 말 한마디, 과거 이력 등을 두고 공방을 벌이며 인터넷에서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라는 건 기사를 통해서 보고 있다.
어느 날은 엄마랑 가볍게 정치며 경제며 이야기를 하다가 '너네는 억울하지도 않니? 안나가도 될 선거 비용이 900억 원이 나간다는데.' 하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그 비용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러게?'라는 의문이 올라왔다.
우리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왜 내가 낸 돈이 저렇게 쓰여야 하는 거지? 잘못을 한 사람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처벌 수위가 약하니 죄송합니다 하고 꼬리 자르기 하듯 도망가버리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가장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과, 부산에서의 선거 비용이 800억에 육박한다는 말에 '왜 그들의 잘못을 우리의 비용으로 대신하는 거야?'라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비용적인 책임을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어...라고 맥이 빠지기도 했다. 늘 이런식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젊은 세대가 치고 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뭘 어떻게 치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줄 마음은 전혀 없이 한심하다며 고개질만 한다.
우리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제대로 사회를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라며 반성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떤 프로젝트나 일을 담당할때 일에대한 책임은 당연하고 더불어 도덕적인 태도 그리고 팀원들에 대한 책임들까지 고려하면서 일을 하는데 나처럼 작은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도 여러 책임들에 대해서 마음이 무겁고 많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자 하는데 저 사람들은 뭔데 저 큰 비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거지? 내가 우습나? 우리가 우습나?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 사회적인 손실이 너무 크잖아? 저 자리에 오르도록 얼마나 많은 난간을 넘어서 갔을 텐데 결과적으로 저런 추한 형태를 보인다고? 곱씹을수록 열 받는 상황이다.
흔히들 어른들은 현재 젊은 세대가 정치에는 관심 없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그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치적인 상황을 잘 둘러보는 것도 잘 사는 이치이지'하며 수긍하기도 하면서 한편에서는 '본인들도 내 나이 일대 정치적으로 활동했나? 오히려 윗어른들한테 나와 같이 훈수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그렇다고 적게 먹었다고 하지 않는 이 나이가 돼서 보니 왜 어린 시절에는 정치가 따분했던 건지 그리고 왜 지금에서야는 약간의 관심이 생기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내가 점점 사회적인 소속을 갖게 되니 사회를 이루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돌아보게 되는 결론에 도달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뭐야?
나는 당연하게 '공산주의요'라고 답했는데 10명에 8-9은 그렇게 답을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도 그렇고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때도 내가 배웠던 사회책 속 정치적인 큰 방향성은 두 가지뿐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우리가 분단된 북한은 공산주의.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에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방향을 이야기해도 보이는 실상은 두 가지 내용이 가깝기 때문에 두 가지 내용에만 집중했던 기억에 당연하게 '공산주의요'라고 답이 나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배경이 시작된 프랑스혁명을 통해 누구에게로부터 혁명이 발생되었는지 생각해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프랑스혁명은 사회의 하급 계층이 들고일어났다는 생각에 그럼 민주주의의 반대가 되는 사회는 '왕권 사회' '독재사회'가 아니겠느냐 라는 답을 듣게 되었다.
늘 이런 식으로 궁금함에 대한 지식을 쌓다 보니 내 아래 세대들은 정치적인 올바른 배움과 경제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과목이 꼭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구분할 수 없는 많은 사회적 방향들이 이 시대에는 혼재되어 있다.
투표권이 있었지만 정치적 판단이나 경험이 없는 나는 정책을 유심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대중성과 감언이설을 내뿜는 정치인들을 선택하기 쉬웠다. 투표하고 나서 올려지는 인증들에 나도 투표의 목적보다는 함께 한다는 인증만을 남기는 목적을 두기도 했다.
내가 오랜 시간 발을 들여놓은 학교와 학생이라는 소속과 신분에서 벗어나 월급을 벌며 국가에 일정 부분의 금액을 납부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정치적인 내용에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는 항목이 되었다.
나는 딱히 진보도 보수도 그렇다고 중도도 아니다. 정치적 성향으로 우리 팀을 가르는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그건 진보!' '그쪽은 보수!'라며 편 가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내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정치적인 팀을 뜻하게 만든다.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일일이 내 단어와 문장에 각주를 달 수도 없는 꼴에 나는 그저 입을 다문다.
입을 닫고 어른들의 오고 가는 정치적인 내용을 듣다 보면 나는 의아함을 가질 때가 많다. 내가 보면 무조건적으로 맞고, 무조건적으로 틀린 것도 없는데 '우리는 팀이 다르니깐 니 말을 무조건 아니야.'라는 태도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때는 너무나 명백한 결론을 내며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며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맞는 거 같은데..'라고 하면 칼 자르듯 '그쪽은 아냐!' 하며 자신의 입장을 빨리 정하고 고수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의 결단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며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나는 저런 소속을 결정짓지 못한 것에 대한 약간의 자책이 들기도 했으니깐. 하지만 사람이 개입돼서 하는 일 중에서 무조건적인 옳음은 있지 않다는 걸 이후로 알게 된다.
엄마는 열성적으로 정치에 대해서 몰입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맞는 말 같으면서도 너무나 많은 채널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의혹'은 있지만 그 의혹이 '아니다'라고 사실로서 확정되면 '아님 말고'라며 내뺀다.
난 그런 '아님 말고'식의 태도가 진절머리 났다.
의혹만 제기해서 무지한 사람들의 마음에 이상한 신념을 심겨주고 혼란을 조장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까지 했다.
무조건적으로 의심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을 보며 민주주의의 단점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보궐선거비용에 정치적인 주절주절을 내뿜었다. 여전히 나는 무지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개돼지라고 말하기도 하고 가붕게라고 말하기도 하고 우매하다고 속단하기도 한다.
내가 지켜본 정치는 좋다 라고 말하기보다 '실망'을 더 크게 준건 사실이다. 어렸을때는 '과연 나의 한표가 영향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했다. 당선된 사람은 반대표에 대해서 경계를 하기보다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런 경험들이 정치적인 실망감을 더 가중시키기도.
그렇기에 선거철에만 국민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내세우지 말고 진정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리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리에 오르더라도 사람을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
일을 잘하고 사람도 잘 어우르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일도 못하는데 사람까지 내팽개치면 그 자리를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닐까? 차라리 일은 못하더래도 사람을 잘 어우르고 융화해준다면 오히려 일 잘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단점을 보완해주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데 마음만 앞서가고 욕심만 많으면 탈 난다.
우리는 늘 후자를 보고 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