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의 인문학적 성찰 에세이
개독은 대한민국에서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는 인터넷 용어이다. 주로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 신자들을 낮게 칭하는 뜻으로 쓰인다(위키백과 정의)
개독이란 말이 요즘처럼 많이 들리는 시기도 없었다. 신천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질타했었던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국가에서 종교 기관 및 단체의 집회를 자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물론, 철저한 방역을 실시하고 뛰어난 시스템을 구축하여 어디보다 감염 확산 방지에 뛰어난 종교단체들이 많겠지만, 지역사회 감염 80프로가 종교 소모임에서 발생하고 있으니 강제 중단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최근 5년 중에 4년 가까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물리적으로 교회를 갈 수 없었던 때부터 꼭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어 물었고, 교회도 가족도 '모임 가운데 함께하는 성령의 역사와 치유함, 교제를 통해 나누는 주님의 사랑...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임의 장점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틀린 얘기라는 생각은 없다. 다만, 모여야만 된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고, 온라인으로도 누리는 은혜는 동일하다 생각하는 1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인의 주장이다.
중동에서 근무할 때, 거기서도 교회가 있었다.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모이지 않고 혼자서도 신앙을 지키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교제를 나눌 수 있는지 시험해본다는 핑계로 설교 영상(출석교회 설교 영상 또는 유명 교회 목사 유튜브 설교 영상)을 보고 들으며 혼자만의 예배를 드렸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하루 쉬는 주일 아침부터 직장 고참들이 모이는 교회에 갔더니 은혜(?)가 안되었다.
나만의 경험이지만, 주일예배와 교회 소모임 등을 참여할 때보다 훨씬 말씀을 많이 접했고,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과 교제했으며, 무엇보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내가 더 뜨거웠을 수도 있지만, 만약 그래서였다면... 개인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싶다.
모여서 드리는 감격과 가치는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교회로 가는 발걸음이 그립고, 동역하는 성도들과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도 다시 해보고 싶다. 잘생긴 목사님의 표정과 목소리를 직접 보고 들으며 은혜를 맛보고 싶다.
근데, 보이지도 않는 치명적인 균에 감염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모여야만 할까?
어디에 계시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예수님 닮는 삶을 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배가 무엇이냐?", "믿음은 무엇이냐?", "교제는 무엇이냐?", "이 시대에 나를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인지 네가 알지 못하느냐?",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느냐?" 폭풍 질문을 쏟아내실 주님이 상상된다.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 23,24절)
중세 레오 10세는 어려운 재정상황에서도 산 피에로 대성당(가톨릭 교회)을 건축하기로 결정하면서 건축비를 충당할 방법이 없자 면죄부 판매를 남발했었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현재의 예배는 그런 비성경적인 모든 예배의 요소를 제거하고 성경적인 교리와 예배가 회복되고 단순해지면서 설교에 맞춰진 것이다. 재정상황이 어려운 종교단체가 많겠지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깨달아 알기 바라고, 이 어려운 시기가 속히 종결되길 기도해야겠다.
아무쪼록, 개독이란 비난을 받는 기독교인들이여! 일부 파렴치한 성범죄 목회자들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지 못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따끔한 주님의 충고로 받아들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