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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섭 Mar 23. 2020

마케터가 만난 브랜드 9

마르코로호 편

나는 브랜드를 만나면서 주로 해당 브랜드의 ‘브랜딩’이나 마케팅 ‘기술’ 중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많이 관찰한다. 첫째도 둘째도 내 역할은 마케터이기 때문이다. 근데, 마르코로호 대표의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기술이 아닌 의외의 말에 펜을 들어 메모했다. 브랜드가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마케팅적 영감 외에 개인과 사회에 줄 수 있는 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marcoroho.com/

인터뷰 중간에 ‘개인의 삶도 챙기기 어려운 이 시대에 사람들이 왜 사회 문제까지 생각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신봉국 대표는 이 물음에 “우리도 언젠간 실버 세대가 되기 때문’이라면서, ‘사회 문제가 무서운 건 눈앞에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그걸 눈으로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어 엄청난 문제가 되어 있을 거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단어 하나가 떠올라 노트에 적었다. 플래그십 브랜드flagship brand. ‘아! 이 브랜드가 우리 시대의 기함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실버 문제’는 나와는 먼 이야기니까. 근데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100살까지 산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브랜드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다니. 제품 말고도 더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마르코로호가 ‘우리 시대의 플래그십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플래그십 브랜드라는 말은 보통 브랜드에서 실제 매출이나 인지도 같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활력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거나, 고객들로 하여금 우리 브랜드의 특정 이미지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게 하는 제품군을 말한다. ‘어느 브랜드의 기함이다’라는 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오늘은 그 말을 약간 틀어서 이야기하려 한다. 나름대로 단어를 수정하자면, ‘사회적 플래그십 브랜드social flagship brand’라 하겠다. 마르코로호에는 우리 사회의 플래그십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들이 존재했다. 오늘은 그걸 독자분들과 나눠보려 한다.   



[플래그십 브랜드라 부를 수 있는 세 가지 이유]



1.착한 ‘척’하지 않는 마케팅


얼마 전 편집장님과 마케팅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소위 ‘착한’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마케팅 방법에 관해서다. 너도나도 착하다는 단어를 붙이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들을 마치 특장점인 양 홍보하는 방법들이 아쉽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컨셉진 75호의 브랜드 기사 ‘아이소이’ 편에서 이진민 대표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 온갖 화학 제품을 다 넣으면서 화장품 병 색만 초록으로 해놓고 착한 브랜드라고 홍보하거나, 유해하지 않은 성분을 넣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마치 대단한 일처럼 마케팅하는 일부 브랜드들을 보면 마음이 어렵다는 이야기.


척하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는 것은 겉으론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꽤 어려운 일이다. 마케팅적인 유혹, 운영상의 편의 등을 생각하다 보면 조금씩 ‘~한 척’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르코로호도 그랬다. 어느 유명인이 착용해서 제품 하나에서만 몇 백 개씩 주문되면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제품들이 모두 100% 할머니 손에서 탄생하다 보니, 하루 생산되는 제품에는 한계가 있다. 이 모자란 수량을 청년들이 만들면 훨씬 더 많이 생산하고 판매를 할 수 있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마르코로호는 순간의 욕심 때문에 브랜드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루 판매 수량 제한을 걸어, 유혹이 생길 수 있는 길들을 막으면서까지 ~한 척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지킨 그들만의 방법이 별의별 마케팅이 다 나오는 이 시대에 적절한 방법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2.제품 개발을 위한 노력


브랜드는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작할 때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아예 잊어버리는 브랜드들이 많은 것 같다. 마르코로호는 이 부분에 해당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반지의 접합 부분을 노력 끝에 새로 만들어 낸 이야기가 그것에 해당한다. 기존의 반지 마감은 이음 처리를 불로 했기 때문에 쉽게 떨어져 버려 상품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걸 같이 창업한 신은숙 이사가 고민한 끝에 안 끊어지는 방법을 새로 만들었다. 액세서리 제품군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라고 여기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들만의 기술을 발견할 수도 또, 매출의 60~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제품군으로 자리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marcoroho.com/

이뿐만이 아니라, 제품을 직접 만들어내는 장인들인 매듭지은이 할머니들을 위한 맞춤 교육 방식을 계속적으로 찾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포기하지 않고, 생산량 증대와 불량률 최소화를 위해서 매번 수공예 디자이너들, 매듭지은이 할머니들, 그리고 판매를 진행하는 마케터가 진솔하게 ‘대화’하면서 머리를 맞대었다. 그 결과, 마르코로호는 이제 일부 액세서리만을 취급하는 브랜드가 아닌 양품점을 준비하는 넓은 카테고리의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3.사회적 진통제 역할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마르코로호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바로 ‘미래’의 내 니즈needs를 지금 풀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고객의 1차적인 니즈를 해결하는 것은 제품을 잘 만들어 소개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는 그 니즈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욕구다. 마르코로호는 그 점을 잘 파악하고, 누군가의 30~40년 뒤의 니즈가 될지도 모르는 ‘실버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윤을 추구하면서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방법인 것이다. 이런 것 때문에 마르코로호는 우리 사회의 ‘진통제’로써 사회적 플래그십 브랜드가 되기에 충분하다.   

conceptzine vol.73

마케팅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 중 ‘비타민’과 ‘진통제’가 있다. 비타민은 우리 삶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거나 약간 불편함만 있는 제품들을 말하고, ‘진통제’는 생필품, 의약품과 같이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제품군을 말한다. 이전까지 나는 사회적 기업이 ‘비타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르코로호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미래 니즈를 파악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런 브랜드들이야말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진통제’다. 시대적으로 보더라도 개인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브랜드 외에 마르코로호같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기업들이 요즘 더 많아지고 있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앞서 언급했지만, 플래그십 브랜드는 매출이나 인지도 같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활력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소비자에게는 강력한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고, 우리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혹시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대표할 만한 우리만의 플래그십 브랜드가 있는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제품군은 무엇인지 정하고, 1) 그 제품이 '~한 척'하지는 않는지, 2) 아직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3) 그 제품이 사회적으로도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제품군이라면 그걸 어떻게 지키고 더 발전시킬지 이 기회에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위의 이야기들은 잘 살펴보면 꼭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본인이 어떤 공동체의 사회적 플래그십 브랜드가 될 수 있는지 깊숙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름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소속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면 기업도 개인도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터 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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