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1-2.도대체 뭘 하고 싶은거야?
개천의 용은 무슨. 처음 시작한 서울살이는 충격적이었다.
일단 내 학점과 석차가 내가 늘 알던 숫자가 아니어서 놀랐고, 각종 자격증에 공모전, 영어 점수, 대회 활동 등등.. 친구들의 스펙에 두 번 놀랐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매번 ‘잘한다’는 칭찬과 주목을 받던 나는 그냥 많은 학생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끈기’라서, 1,2학년 때는 열심히 남들처럼 다시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이상, 보란듯이 대기업에 합격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제대한 이후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들은 한 전공 수업 때문이었다. ‘전략 마케팅strategic marketing’이라는 강의였는데, 생각해보면 그 때가 내가 처음으로 ‘마케팅’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때인 것 같다. 전략 마케팅에서는 우선 브랜드에 대한 이해와 브랜드를 지탱하는 브랜드 에센스, 이미지, 슬로건 등의 하위 개념들을 배운다. 그런 원론적인 것들이 지나가면 본격적으로 사례들을 파헤친다. 과연 어떤 것들이 ‘실제’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 수업을 통해, 그리고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목표(막연하게 대기업에 취업하겠다는)는 바뀌기 서서히 시작했다.
그때쯤, 나와 비슷한 나이의 경영학과 학생들은 CPA(공인회계사시험), 손해사정사, GSAT, SKCT 등에 열을 올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취업의 문은 절대적으로 좁았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는 모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더 열을 올렸던 것 같다.
혹시나 싶어 말하는 것이지만,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잘못된 목표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이 대기업이라면 무조건적으로 그 목표를 이루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목표를 설정했다. 청년 실업의 현실 탓을 하기도 하고, 대세가 곧 답이라는 생각으로 나의 미래를 정했다. 다른 기회들을 찾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핑계를 대자면, 대학생 신분의 만료 기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곧 다가올 4학년이라는 신분에 대한 불안함, 조급함을 가지고 CPA 1차 시험 문제집을 사고, 학교에 마련된 공시 준비반에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3학년 가을 학기가 시작할 무렵, 전략 마케팅 수업의 과제를 하면서 생각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과제의 내용 중 질문이 있었는데, ‘좋은 직장’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다. ‘이건 쉽네! 나에게 좋은 직장은 삼성이나 현대…’라고 이유를 서술하려다가 타이핑을 멈췄다. 삼성이나 현대? 내가 그 두 곳을 목표로 삼은 이유가 뭐였더라? 응?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은거야?
나는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은가?
나는 위의 자문self-questioning에 선뜻 대답을 못했다.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연봉 혹은 선배들의 추천대로 목표를 정했으니까. 우리나라 50대 기업에 입사하는 것. 그것이 내 이십 대의 가장 큰 성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략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내 안에 계속해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한 목표는 내가 달려갈 길이 아니라고.
지금 취업해도 몇십 년을 일 할텐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있나?
누군가 내일 당장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킨다면, 그게 무슨 일이면 좋겠는가?
어떤 직장이 진짜 ‘좋은 직장’일까?
수 많은 질문들이 내 머리 속에서 이어졌지만, 딱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답을 못했다. 왜 이걸 이제야 생각하고 있는 걸까 후회하면서도 내 속에 무엇인가 꿈틀대고 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그때 내가 답할 수 있었던 질문은 ‘지금 어떤 것에 흥미가 있나’다. 따분하다고 느꼈던 수 많은 강의 중, 전략 마케팅은 내가 유일하게 다음 시간을 기다리면서까지 재미를 느끼는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의 꽃은 마케팅 사례를 분석하고 발표하는 PT의 순간이었다.
희한하게도, 그 당시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이 찾아온 사례 중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은 모두 다 스타트업 기업들의 사례였다. 그때부터 내가 알고있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 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고 달리고 있던 내게, 누군가가 가리개를 치워버린 후 옆과 뒤의 광활한 땅을 보여준 것만 같았다. 이때 부터 나는 친구들과 조금씩 다른 행보를 걸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할거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내가 모르는 국내외 마케팅 사례를 웹툰 보듯이 매일 찾거나, 실제로 내가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실험하기도 했다. 그 실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베이커리 카페에서의 일이다.(--------다음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마케터 호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