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리병이 친환경 포장이라고?
환경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이렇게 말해봤을 거예요.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 쓰는 게 낫지!”
특히 투명하고, 무게감 있고, 재활용도 잘 된다는 유리병. 왠지 친환경의 대표 주자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활용이 잘 된다 = 친환경이다’는 공식이 항상 맞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유리병은 깨끗하게 씻어내고, 녹여내면 다시 유리병으로 만들 수 있어요. 플라스틱처럼 품질이 낮아지지도 않고요. 심지어 무한 반복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재활용이 잘 되는 유리 = 환경에 가장 좋은 포장재"라고 믿어요.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함정이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콜라 500ml짜리 한 병을 생각해 보세요.
유리병은 약 233~305g,
알루미늄 캔은 16g,
PET병은 23~35g 정도예요.
단순히 숫자로만 봐도 차이가 크지만, 이걸 트럭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양으로 바꿔 보면 더 실감이 나요.
500ml 유리병 2,000개는 약 466~610kg
알루미늄 캔 2,000개는 고작 32kg에 불과하죠.
그러니까 같은 트럭에 유리병 대신 캔을 싣는다면, 무려 30,000개를 더 실을 수 있는 셈이에요.
조금 더 무거운 유리병을 쓰는 게 뭐가 문제냐고요? 유리병은 같은 양의 알루미늄캔이나 PET병을 보낼 때 보다 트럭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그러니 당연히 연료를 더 사용해야 하고, 기후 위기의 주범인 탄소가 더 많이 배출되지요. 실제로 유럽, 미국,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이걸 LCA (전과정평가, Life Cycle Assessment) 기준으로 따져봤더니, 유리병의 운송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PET병이나 알루미늄보다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구 결과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맥주 용기를 갈색 유리병, 투명 유리병, 캔, PET병으로 나누어 500ml 3병 기준의 탄소발자국을 조사했어요. 그 결과 투명 유리병 (1564.3CO₂eq) > 갈색 유리병 (1424.9 ) > PET병 (129.7) > 알루미늄 캔(103.6)으로 나타났어요.
다시 말해 투명 유리병 맥주를 12번 이상 다시 사용해야 PET병보다 탄소발자국이 낮아지는 겁니다. 국내 주류 업계에서 평균적으로 유리병을 5~10회 재사용한다고 하니 아직은 PET병이나 알루미늄 캔을 이용하는 게 더 환경에는 좋다고도 할 수 있어요. 물론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는 최대 40회까지 재사용한다고 하니 대단하죠?
특히 지구온난화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나타내는 GWP (Global Warming Potential, 지구온난화잠재력) 지수 기준으로 보면 장거리 운송에서 유리병이 가장 불리한 포장재로 분류됐습니다.
유리는 말 그대로 ‘깨지는’ 포장재예요. 배송 도중에 떨어지거나 충격을 받으면 내용물까지 함께 손실됩니다.
만약 배송 도중에 유리병이 깨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추가 운송
재포장
파손된 병과 내용물의 폐기 처리
이 모든 것이 추가 탄소 배출로 이어집니다. 특히 온라인 배송, 수출입 물류, 내륙 장거리 운송처럼 여러 번 옮기고, 다양한 환경을 거치는 구조에서는 오히려 가볍고 튼튼한 알루미늄 캔이나 PET병의 전체 탄소 발자국(footprint)이 더 낮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유리병은 재활용이 잘 됩니다. 하지만 재활용 이전 단계, 즉 운송과 물류에서의 탄소 비용을 무시하면 진짜 친환경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친환경’은 단순히 무엇으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고, 얼마나 오래 쓰이며, 전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로 봐야 해요.
같은 이유로, "재활용 잘 되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조금 더 다층적인 고민이 필요한 말이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스테인리스 텀블러 그리고 플라스틱 텀블러 중에 누가 더 친환경인지는 사용 횟수 등을 따져봐야 해요. 사용기간에 따른 각 용기의 탄소발자국을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각 용기의 사용 기간을 단지 하루라고 한다면, 일회용 플라스틱컵의 탄소발자국은 스테인리스 텀블러의 10%, 플라스틱 텀블러의 40%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사용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난다면, 일회용 플라스틱컵의 탄소발자국은 플라스틱 텀블러의 65배, 스테인리스 텀블러의 12배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 텀블러를 오래 써야만 더 친환경이라는 의미가 되겠죠?
결굴 ‘잘 재활용되지만 잘 깨지고 더 무거운 유리’와 ‘재활용은 덜 돼도 덜 깨지고 덜 무거운 캔’ 사이의 선택은 단순히 흑백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는 거예요. 친환경은 선택의 정답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전략이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