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장이 지구를 구한다?
식료품에 비닐을 없앴더니 음식이 더 버려진다?
요즘 장을 보러 가면, 식료품 포장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걸 느끼시나요? 딱딱한 플라스틱 대신 종이로 바뀌고, 과일이나 채소도 포장을 아예 없애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다 아시죠? 플라스틱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 때문이에요.
그런데 플라스틱을 없애는 게 정말 환경을 보호하는 일일까요?
왜 음식물 쓰레기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보고가 최근 여러 연구에서 등장하고 있을까요?
대부분 포장을 ‘쓸데없는 쓰레기’처럼 느끼지만, 사실 포장은 음식이 집까지 잘 도착하도록 도와주는 꽤 똑똑한 장치예요.
수분이 날아가는 걸 막아주고,
산소가 들어와 음식이 변하는 걸 막고,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 오염도 줄이고,
충격을 흡수해서 멍들거나 으깨지는 걸 방지합니다.
말하자면, 냉장고 밖의 첫 번째 보호막 같은 존재지요. 그런데 요즘 이 포장을 줄이자는 흐름이 생기면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음식은 더 빨리 상하고, 쉽게 터지고, 잘 무르고, 더 많이 버려지기 시작한 겁니다.
최근 마트에서 포도 한 송이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단단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는데, 요즘은 종이상자에 그냥 담겨 있는 경우도 있어요. 문제는 이럴 경우, 포도가 떨어지고 터지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에요. 흘러내린 포도알 몇 알은 청소도 어렵고, 냉장 온도에서 금방 곰팡이도 피우죠. 이러면 소매점에서도, 집에서도 더 많은 포도가 못 먹고 버려지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이 질문은 최근 환경학자들과 유통 전문가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포장 쓰레기를 줄이는 것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게 탄소배출에는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이런 개념이 있어요. 바로 LCA (Life Cycle Assessment, 전 과정평가)라는 건데요. 제품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제품이 태어나서 사라질 때까지의 전 과정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즉, 마트에서 "배송된 음식" 기준이 아니라, 실제로 ‘먹힌 음식’(eaten food) 기준으로 계산해야 진짜 친환경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포장이 없어서 음식이 상해버리면? 그 음식에 들어간 생산, 운송, 냉장, 조리까지의 모든 탄소 배출이 그대로 낭비되는 셈입니다. 결국 포장 없이 ‘버려지는 음식’은 포장재보다 훨씬 더 큰 탄소 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이 비닐 포장이에요. 오이는 껍질이 얇고 수분을 빨리 잃는 채소예요. 랩 한 겹으로 싸면 수분이 날아가는 걸 막아줘서, 무르게 상하는 걸 방지할 수 있어요. 실제로 스페인에서 스위스로 오이를 수출하는 공급망을 LCA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비닐랩으로 포장된 오이가 소매점에서의 손실률을 약 4.8% 줄였다고 해요. 놀라운 건, 이 비닐 한 장이 가져오는 환경 이득이 그 비닐을 만드는 환경 부담보다 약 4.9배나 크다는 점이었어요.
결국 오이 1개가 버려지는 환경 피해가, 오이 90개에 비닐을 씌우는 피해랑 비슷하다는 결론이 납니다. 이런 수치 앞에서는 ‘얇은 비닐 한 장’도 가볍게 볼 수 없겠죠?
그런데 오이와 비슷한 호박은 어떨까요? 오이는 호박에 비해 껍질이 얇고, 섬세해서 수분에 대해 좀 더 민감합니다. 그래서 비닐이 없으면 더 빨리 건조해지고, 신선도를 잃게되는거에요. 하지만 호박은 껍질이 두껍기 때문에 이런 비닐 보관이 필요없어요. 그런데도 호박에 비닐이 싸여 있는 경우를 보신 적이 있다구요? 그것은 우리 손이나, 물건들에 묻어있는 박테리아 등의 세균이나 먼지 묻지 않도록 하는거에요.
실제 유통 현장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어요. 영국의 유통기업 Morrisons(모리슨스)는 플라스틱을 없애고, 농산물을 포장 없이 진열하는 ‘포장 없는 채소 판매’를 시도했는데,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어요.
플라스틱은 분명히 줄었지만,
매장 내 음식물 폐기량이 실험 전 대비 2.7배로 증가했습니다.
즉, 환경을 지키려던 시도가 오히려 음식을 더 많이 버리는 결과를 낳은 겁니다. 특히 껍질이 얇거나 수분 손실이 큰 채소는 포장 유무에 따라 폐기율이 크게 달라져요. 오이, 상추, 바나나, 키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품목이에요. 이런 품목은 포장 없이 진열되면 상처 나기 쉬우니까요.
여러분이 한 판의 냉동 피자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밀가루를 만들기 위해 밀을 기르고
토마토를 따고 소스를 만들고
치즈를 위해 소를 키우고
냉동 유통망을 통해 수천 km 운송하고
매장에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누군가 장바구니에 담고 집으로 가져간 뒤
냉동실에 넣고, 오븐에 굽고, 드디어 먹게 되죠.
그런데 포장이 부실해서 피자가 부서지고, 냄새가 나서 못 먹게 됐다고 해봐요. 그럼 그 피자 하나에 들어간 모든 에너지와 자원이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로 사라지게 되는 거예요. 그냥 포장 쓰레기 하나보다 훨씬 더 큰 낭비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엔 단순히 ‘플라스틱 포장 반대!’를 외칠 것 아니라, ‘음식물 낭비까지 고려한 포장 설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플라스틱을 줄이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먹힌 음식' 기준의 탄소배출량(LCA)이 적어지도록 하는 게 진짜 친환경이라는 것이지요.
포장을 줄이려는 시도는 물론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포장이 없어서 음식이 아예 버려진다면, 결국 더 많은 탄소,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포장은 단지 쓰레기가 아니라, 음식을 보호하고 지키는 작은 보디가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죠.
결국 포장은 더 이상 ‘불필요한 쓰레기’가 아니라, 음식을 살리고 환경을 지키는 역할도 함께 맡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