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채로 끝까지 해낸 하루
0320. 그날은 다니던 바리스타 학원에서 듣는 2급 과정의 마지막날이었다. 그리고 자격증 시험을 보는 날이기도 했다. 당일이 되면서, 내겐 선뜻 뭐라고 이름 붙이기가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떠올랐다. '언제 수료하려나'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수업의 마지막날에 닿았다는 느낌이 낯설었고, 거기에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특유의 긴장감이 함께 얹혀 있었다.
나는 국내 2급 자격증을 목표로 했다. 이 단계에선 주로 커피 맛보다는 기술을 위주로 평가를 받는다. 머신을 다룰 수 있는지, 정해진 기준 시간 안에서 커피를 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달 과정 중에 3분에 2 가량을 넘어섰을 즈음까지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뭔가 하기는 하는데, 손에 잡히는 대로 붙는 감각이 아니었다.
특히 에스프레소 추출량 조절과, 카푸치노 거품을 만드는 데 유독 애를 먹었다. 일정 시간 안에 일정량을 추출해야 하는데 매번 결과는 들쑥날쑥했고, 카푸치노 거품은 아예 형태가 없이 나오는 게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 가량 연습실을 빌려 안 되는 동작을 주야장천 연습했다. 그 덕에 제법 고쳐지긴 했다만, 아쉽게도 '감 잡았다.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시험 전날까지도 실습을 마치고 와서는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힘닿는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신의 뜻에 맡기자고. 조금이나마 부담을 내려놓고자 되뇌는 마음의 주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원이 시험장의 역할까지 해서 쓰던 머신을 그대로 다룰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던 곳에서 시험을 치른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를 알게 됐다.
자격증 실기 시험은 준비 과정 5분. 시연 과정 10분, 총 15분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기에 더더욱 정신만 놓지 말자고 다짐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 순서는 뒤쪽이었다. 그래서 일찍 시험을 마친 사람들을 보며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도 얼른 후련해지고 싶다. 그렇게 몇 번을 웅얼거리다 보니, 마침내 내 차례까지 다가왔다.
딱 연습대로만 하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준비과정에서부터 실수를 했다. 추출에서 잘못된 건지, 탬핑에서 힘 조절을 못한 건지 에스프레소 추출량이 너무나 적게 나왔다. 20-30초 사이에 25-35ml를 맞춰야 했는데, 30초를 꽉 채워도 20ml가 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샷글라스 두 잔을 버리고 아예 새로 추출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엔 양이 잘 맞게 나왔는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혔다는 점이었다.
정리만 남은 상황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간 30초 남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심장이 조여왔다. 옆 머신에서 시험을 본 사람은 이미 몇 분 전에 마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내 모습을 지켜보던 어느 이모님께서 조금 놀란 듯 '아직 마무리 안 했어?'라며 혼잣말을 하셨다. 시간은 결코 부족하지 않을 거라 했는데, 그 시간 때문에 실격될 수 있는 상황. 천만다행으로 10초 남짓을 남겨두고 준비 과정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카푸치노 두 잔을 내리는 시연 과정이었다. 그게 준비 과정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전 단계에서 진땀을 빼 선지 오히려 추출과 스티밍은 차분하게 할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카푸치노의 거품 또한 제법 봐줄 만하게 나오면서 3분을 남겨두고 안전하게 마무리 지었다. '마쳤습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조금 후련한 숨이 흘러나왔다.
9명의 수강생들이 받은 시험 결과는, 전원 합격이었다. 합격이라는 단어가 귀로 들어오자, 그동안 잊고 지내온 감정이 천천히 올라왔다. 성취감이었다. 그동안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 속에 있었기에, 무언가에 부딪히며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괜히 고맙고 기뻤다. 그렇게 2급 과정을 마치고서 일주일 뒤, 자격증을 받으러 다시 학원을 찾았고, 나는 1급 과정을 이어 신청했다.
2급을 들을 때만 하더라도 1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가벼운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한 준비는 없으니 그저 끼어든다는 자세로. 분명히 더 어려울 거라는 걸 알지만, 전보다 조금은 용기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4월 20일, 그때부터 또 한 달간 잘하려 하기보다는, 엉성하게 부딪히며 배워보려고 한다. 많이 생각하지 않고, 그날의 몫을 그날에 다 쓰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