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아빠가 잠깐 집에 들른 친구에게 건넨 말이다.
“아빠, 나 서른 넘었어!”
아빠 눈엔 나는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회사 때문에 자취를 하고 있고 가끔씩 본가에 가는데, 집에 들어가는 순간 아빠는 언제나 뛰어나와 나를 끌어안고 “우리 선홍이 왔어!”하며 엉덩이를 두드린다. 나는 “나와봐~ 씻게” 하며 밀어내곤 한다. 뭘 먹고 있으면 “이빨 닦고 자라” 집으로 돌아갈 땐 “불조심! 전기조심! 물조심!”을 연달아 외친다. 들을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밥은 잘 챙겨 먹니, 빨래는 어떻게 하니, 청소는 하니, 연금저축은 하고 있니, 주식 많이 하지 마라-등을 듣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나는 부모님께 표현도 잘 못하고 연락도 자주 안드리는 다소 무심한 아들이다.
혼자 나와 살아보니 당연하지 않은 게 정말 많다. 부모님이 해주셨던 것들을 새삼 깨닫고 “잘해야지, 잘해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가 알아서 할게”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부모님과 관련된 책,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때뿐, 행동에 변화가 없는 나를 보며 일종의 죄책감도 느끼곤 했다.
이런 부조화를 종종 느끼며 살다 정말 좋아하는 문학평론가인 신형철 교수님의 책 [인생의 역사]의 한 챕터를 읽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교수님이 아이가 생긴 후 사랑의 종류가 다름을 깨달으며 내린 결심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이 구절을 읽고 확신했다. 나는 결코 부모님의 사랑을 되갚을 수 없다는 걸, 애초에 그런 종류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님의 사랑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껏 하게 두는 것이 어쩌면 효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이렇게 생각하니 되갚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어지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비겁한 합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담이 줄었고, 사랑 표현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니, 나 자신도 자연스럽게 조금은 더 살가워졌다.
자식이 생기기 전까진 부모님의 감정을 절대로 알지 못할 테고, 나도 언젠간 생긴다면 사랑을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우선은 부모님의 사랑을 도망치지 않고 느껴보려 한다. 이번에도 문을 열자마자 뛰어나올 아빠를 생각하니, ‘내가 마흔이 돼도 똑같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