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과 담을 쌓은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체육시간 외에는 운동장 밟을 일이 거의 없었고, 평생 운동이라곤 군대에서 억지로 한 게 다였다. 자연스럽게 운동신경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다들 운동 취미가 하나씩 생길 때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담을 타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새 6년째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친구의 권유였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접점이 적어지니 뭐라도 함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첫 체험은 역시 쉽지 않았다. 힘없는 팔과 다리는 벽에서 벌벌 떨렸고, 친구들이 오토바이 타냐며 놀려댔다. 하지만 놀랍게도 재밌었다.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힘들게 다가가다, 마침내 탑 홀드를 잡았을 때의 쾌감은 계속 생각났다. 이후 강좌를 등록해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꾸준히 다니고 있다.
내가 즐기는 볼더링이라는 종목은 ‘몸으로 푸는 퍼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 근력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동작 및 스킬 등을 계획하고 조합해서 탑 홀드에 도달해야 한다. 여러 난이도가 있어 각자의 수준에 맞춰 즐길 수 있고, 문제도 주기적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재미를 느끼고 꾸준히 해온 덕분에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나도 지금은 나름 잘하는 편에 속하며, 상위 난이도의 문제도 풀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이밍은 나의 일상 일부가 되었고 해외출장이나 여행 시에도 시간을 내 클라이밍을 하러 간다. 예전 같으면 ‘그 먼 곳까지 가서 시간 아깝게 운동을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타지에서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고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정말 좋은 추억이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다소 변했다. 회사 근무지가 변경되어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고, 혼자 하다 보니 심심해 클라이밍 소모임에 가입했다.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면 항상 주어진 환경 내에 존재했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사귀어 왔던 것 같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집단에 속해 본 적도 없고, 타고난 성격 탓에 처음엔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다. 때로는 다가오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즐거워졌고 동기부여도 많이 됐다. 지금은 여행도 같이 가고, 운동 외 관심사까지 모임이 확장되는 등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되었다.
돌아보니 내가 절대 안 할 것 같은 활동을 시작한 계기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내가 못하고 관심 없었던 분야에도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뭐든 꾸준히 하면 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생겼다. 초등학생 때를 제외하고 평생 일기 한 줄 안 쓰던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도 비슷하다. 일단 꾸준히 해보려 한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소재를 찾기 위해 인생을 돌아보거나, 일상에 대한 관찰력이 높아지는 등 벌써부터 변화가 있다. 실력이 좋아질지, 중간에 포기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예측불가이나 긍정적일 것이란 건 분명하다. 그동안 쌓아놨던 담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며 새로운 담을 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