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me-me하게.
'아, 위험하다. 정말 위험해. '
여지껏 살면서 삶이 재미없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재미를 잃어버린채 쳇바퀴돌듯 살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정말 위험했다.
살면서 힘들거나 고민이 있었던 적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재미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재미가 없더라도 자의반 타의반 시작한 일들이 있어서 언제나 해야할 일은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나는 언제나 큰 위기도 고난도 없이 살아왔다. 어찌보면 순탄하게 흘러흘러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취업이 쉽지 않은 시기에 한 번에 잘 풀려 좋은 직장에 들어온 것이 천운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위기는 여기에서 찾아왔다. 남들 보기에는 명함 내밀면 누구나 아는 그런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지만, 얼떨결에 발을 들인 이 업계에서는 그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 생각의 방식들은 전혀 의미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 뿐인 세상에서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배워간다고 생각하며 한동안을 그렇게 지냈다. 출근, 퇴근, 잠시 휴식, 그리고 다시 출근.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에 주말이면 더 열심히 나가 돌아다니고 친구들도 만났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휴대폰 사진첩에 쌓인 사진들을 보는데,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 모습이 맞고 같은 멤버들과 찍은 사진인데도 묘하게 그 안의 나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가진 것은 더 늘었을 터인데, 도리어 진심으로 웃는 법을 잊고야 말았다.
간만에 좋은 소식으로 친구를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 J양의 취업 소식. 이 험난한 세상에 좁은 문을 뚫고 자리를 얻어낸 친구. 본래 가려던 길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삭막한 업계 내에서 제일 다이나믹하고 친구의 장점이 반짝반짝 빛날 만한 직무였다. 미술관 앞 뜰에 앉아 바람을 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요즘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에 들뜬 친구를 앉혀두고 마음이 지쳐버린 이야기를 하는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너무 달라진 내 모습을 설명하는 길은 요즘 나의 하루, 느낌,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 뿐이었다.
너가 지금 힘들다고 하는 것들, 너가 보내는 시간중에 너가 즐겁고 행복한일이 없어서 그런건 아닐까. 그런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보는 건 어때?
오랜 친구의 말마따나, 해답은 간단했다. 인생에서 아무런 낙이 없어 힘들다면 낙을 만들면 될 것. 문제를 알고나니 뻔한 답이었다. 이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간 혼자 끙끙댔는데 너무 멍청했달까. 나를 오랫동안 봐온 친구답게 그가 툭툭 내뱉어준 말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를 만나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내가 나를 잊고 살고 있었구나. 회색 인간들 사이에서 끙끙대고 있었구나.
어떻게든 시작을 해보겠다고 쓰는 글인데, 이 글 마저도 첫 단어를 쓰고 발행하기까지 족히 한 달은 걸렸다. 밋밋한 백반같은 이런 글을 누가 읽어줄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뭔가 사회를 꿰뚫는 통찰도, 비판도, 아무것도 없는 푸념뿐인 매거진이 될지라도 나만의 킨포크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도 이 글을 쓰고 다듬는 동안 나는 모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아니라 나만의 궤적을 걸어온 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 '발행' 버튼을 누르면 이 기록들의 끝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일단 시작은 하게 되는 거겠지.
그래, 어디 한 번 찾아보자 그놈의 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