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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대리 May 10. 2023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프리랜서 4년차, 회사로 돌아갑니다

"안녕하세요 션님! 로이랑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희 제품을 보내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 DM에 답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죠. 뷰티 크리에이터인 제가 반려용품 회사에 직원으로 일하게 될 줄은요. 그렇습니다, 저 취업했어요^^ 잠시 브런치를 쉬어 가기 전 구독자 분들에게 제 근황을 정리할 겸 알려드리려 왔어요.


 제가 일하게 된 곳은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테라카니스’, ’테라팰리스’라는 브랜드의 수입 판매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주)대주바이오라는 회사예요. 국내에 자체 연구소와 생산 공장이 있어서 샴푸, 귀세정제, 보습제, 발 세정제 등 반려동물 위생용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회사와의 인연은 인스타그램으로 시작됐습니다. 작년 10월 중순, 제 반려견인 로이 계정으로 DM이 한 통 왔어요. 한 회사의 대표인데 취급하는 사료를 선물로 보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로이는 입맛이 까탈스러워서 사료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거든요. ‘새로운 사료 시도나 한번 해보자’하고 받았는데 웬걸, 애가 너무 잘 먹네요? 호기심이 생겨서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독일의 동물 사료 전문 브랜드로, 성분이나 재료에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 곳이더라고요. 사료를 보내주신 대표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면서  ‘제품이 정말 좋은 것 같다, 브랜드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반가워하시며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답장이 왔어요. 그렇게 ‘그냥 밥 한번 먹자’라는 흔하디 흔한 빈말로 끝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2월, 필리핀에 2주 동안 어학연수 가 있을 때 대표님으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왔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있어서 갈증이 있는데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정중하게 미팅 요청을 주셨어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고 머지않아 실제로 처음 뵙게 됐습니다. 당시 대표님이 갖고 있었던 고민은 브랜드 및 제품의 높은 퀄리티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정성 있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마케팅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테라카니스의 제품을 사용해 보고 팬이 된 제 개인적인 경험과 스타트업에서 브랜드 매니저였던 경험을 살려, 나름의 마케팅 아이디어를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은 제 이야기를 경청하시더니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혹시 저희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건 어떠실까요?” 난생 처음으로 받은 스카우트 제안이었어요.  반려동물 시장도 점점 성장하는 추세이기고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 보였어요. 또, 대주바이오의 모기업인 (주)대주는 업력이 40년 이상 된 중소기업이라는 점도 신뢰가 갔고요. 그렇게 갑작스럽지만(?) 다시 4대 보험 적용받는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이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니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제가 취업을 하고, 매주 대학교/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성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데요. 작년에는 SNS 콘텐츠 관련 강의를 했다면 올해는 연성대학교 뷰티스타일리스트과의 메이크업 전공 수업을 담당해 1학년 메이크업 기초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뷰티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지만 사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줄곧 화장품 회사 취업을 위해 큼직한 마케팅 대외활동을 했고, 메이크업 아카데미도 수료해 아모레퍼시픽에서 5년 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근무하는 등 메이크업 분야에서 착실히 전문성을 쌓아왔습니다. 업계 관심이 있다는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 피부미용사, 메이크업 국가 자격증까지 취득했을 정도죠. 제 경력을 보고 교수님께서 전공 수업을 맡겨주셔서, 3월부터 신입생 22명에게 메이크업 역사부터 메이크업 기초 이론과 실습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메이크업 시연은 수도 없이 했지만 대학에서 메이크업 강의는 처음인 데다, 심지어 메이크업은 기술을 알려줘야 하다 보니 첫 한 달은 매주가 챌린지였습니다. 매주 밤을 새우며 수업 준비를 했고, 벌써 두 달이나 지나고 있고 곧 시험을 앞두고 있어요. '정호석 교수'라는 직함을 볼 때마다 낯설지만 보람도 있고 신기한 경험이에요.


 연성대뿐만 아니라 SM유니버스라는 곳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SM유니버스는 SM엔터테인먼트와 모델 에이전시 에스팀, 종로학원 세 회사가 합작해, 보컬, 프로듀싱, 배우, 모델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10대를 대상으로 만든 교육기관이에요. 저는 모델/배우 전공 학생들에게 주 1회 소셜미디어 수업을 하고 있어요. 작년 연성대학교 소셜미디어 강의와 같은 주제이지만 교육 대상이 달라진 데다 SNS 알고리즘도 계속 달라지다 보니 매주 수업 준비도 새롭게 해야 할 게 많더라고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항상 단기부터 중장기의 인생 계획을 세우며 살았어요. 자기 계발서들에서 공통적으로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로드맵을 세워라’는 말을 본 영향이 컸어요. 그런데 2023년, 프리랜서&크리에이터 생활을 하다 보니, 로드맵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오고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당장 한 달 뒤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은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를 최선을 다해 붙잡고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 기회들이 또 다른 길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연성대학교 출강 경력이 또 다른 강의 기회를 열어준 것처럼요.


 너무 좋은 이야기만 했나요?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졌던 건 아닙니다. 반년 가까이 매주 브런치에 제 이야기를 업로드를 하면서 올해 초, 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았던 적 있습니다. ‘내가 드디어 작가가 되는 건가?’ 김칫국을 양동이 째로 들이마시면서 출판사의 편집 팀장님과 대표님도 만나서 대면 미팅도 하고 통화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저와 출판사가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서 오랜 논의 끝에 출간은 무산이 됐어요.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던 만큼 분명 좌절감도 느꼈지만 무리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좀 더 내 이야기를 쌓고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스스로를 중간점검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회사 취업에, 강의, 출판 등 말 그대로 ‘N잡러’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본업은 뷰티 크리에이터입니다. 다양한 브랜드와 지금도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을 하고 있고요. 제게 찾아왔던 기회들 중 과거의 제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또 이 선택이 저를 어디로 이끌지는 모릅니다. 확실히 제가 아는 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잠깐 브런치는 휴재하려고 합니다.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쌓고 돌아와서 션대리 파트 2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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