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성격 더러운 아빠 타고 있다?”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자동차 뒷유리에 붙은 스티커 한 장 때문이었죠.
“성격 더러운 아빠하고 운동하는 아들내미 타고 있다.
시비 걸지 말고 지나가라. 좋은 게 좋은 거다.”
언뜻 보면 농담 같기도 하지만, 읽고 나면 묘하게 불쾌한 문장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말하면서도, 문장 전체가 이미 위협으로 시작하니까요.
요즘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초보운전입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대신
‘건들면 이빨 부숴 드립니다’, ‘앞 차에 시비 걸면 피 봅니다’ 같은 스티커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웃자고 붙였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죠.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차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는 걸 보면,
그 아이는 어떤 말을 들으며 자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운전은 그 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하죠.
작은 끼어듦에도 욕을 내뱉는 사람,
양보받으면 손 한 번 들어주는 사람,
급하게 가면서도 횡단보도 앞에선 멈추는 사람.
그 차 안의 행동은 그대로 그 사람의 ‘생활 언어’이기도 합니다.
결국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리고 인격은,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에서 시작되죠.
사람은 ‘말투’를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남길지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합니다.
스티커 한 줄, 짧은 문장 하나라도 그 안에는 생각과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배려해 주세요’라는 말을
‘건들면 다쳐요’로 바꿔버릴 때,
우리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는 문화를 잃습니다.
사실, 이런 공격적인 문구를 붙이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됩니다.
위협적인 운전 문화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위협은 결코 안전을 만들지 않습니다.
두려움 위에 세워진 평화는 언제든 깨지니까요.
진짜 안전은, 서로의 여유에서 시작됩니다.
‘미안합니다’, ‘먼저 가세요’, ‘감사합니다’
이 세 마디가 도로 위의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 아닐까요?
몇 해 전 한 국회의원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규격화하자. 그래야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습니다.
결국 제도가 아닌, 문화의 문제입니다.
내가 선택한 한 문장,
그 문장이 내 인격을 보여주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오늘 나는 어떤 말을 달고 달릴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짧은 말들이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말은 결국 그 사람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우리가 세상과 마주하는 첫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