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려다 오해받았다?

요즘 부모의 역할은 참 어렵다.

by 김태선

자식 결혼 준비를 도우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괜히 내가 나선 걸까.’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나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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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비 신혼부부인 아들의 전셋집 문제로 마음이 꽤 불편했다.

전세금은 반반 부담하기로 했고, 아들이 조금 더 보탰다.

나는 전세금 일부를 아들에게 차용해 줄 계획이었고,

절차와 형식을 갖춰 상환받으면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약은 처음에 며느리 단독 명의(임차인)로 진행되었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요즘은 공동명의가 대세이고 당연히 그렇게 할 거라 생각했는데..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게 내내 찜찜했는데... 역시나 문제의 여지가 남았다.

아들에게 빌려주는 돈 때문이다.


만약 내가 아들에게 빌려준 돈이 며느리 이름으로 임대인에게 입금된다면,

나중에 세법상 증여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다.

특히 혼인 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가 생기면 아들보다 오히려 며느리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여로 오해되면... 증여세를 내야 하는 문제도 있어서.


그래서 공동명의로 계약을 다시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아들. 며느리가 공동 임차인으로 계약을 다시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

임대인의 양해를 구하고 계약서를 다시 쓰면 될 일이다.

관리하려는 마음도, 간섭하려는 의도도 아니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와 문제를 미리 막아주고 싶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남편은 “괜히 아이들 일에 관여해서 일을 키운다”라고 했고,

아들은 난처해했다.

아들에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공동명의로 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는데..

충분히 이해를 못 한 것 같다.

며느리에게도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설명은 빠지고 ‘공동명의로 다시 써라’는 말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전달 방식이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 아이들을 위해, 특히 며느리가 나중에 불편해질 일을 막고 싶어서 한

말이었지만, 듣는 쪽에서는 ‘불신’이나 ‘간섭’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었다.

도와주려던 마음이 오히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더 속상했다.

며느리와 직접 통화해 설명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사이라

선뜻 연락하기도 망설여졌다.

며느리가 어려울까 봐 아들에게 당부했다.

엄마 전화번호 알려주고, 공동명의에 대해 잘 이해가 안 되면 전화하라고 전했는데..

그마저 전달이 안된 것 같다(?)


전화 한 통 없다는 사실에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요즘 세대에게 어른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알기에 또 마음을 접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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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요즘 부모의 역할은 참 어렵다.


도와주면 간섭이 되고,

물러서면 무관심이 된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부모의 조언은 결정이 아니라 선택권을 주는 데서 멈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오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식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상처가 아니라 다리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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