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용돈 10만 원”… 누가 맞나?”
나는 왜 그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을까
요즘 뉴스 하나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30대 부부가 첫 명절을 앞두고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은 “양가 부모님께 10만 원씩 드리자”고 했고,
아내는 “한 번 시작하면 계속해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댓글은 둘로 갈렸더군요.
“그 정도도 못 드리나”
“각자 부모는 각자 책임져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솔직히 마음이 조금 복잡했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세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렇게 자랐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더 어려웠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명절이면 봉투를 준비했습니다.
그게 ‘효도’였고, 그게 ‘도리’라고 배웠으니까요.
금액이 크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죠.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고맙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명절에 부모님께 작은 용돈을 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 세상은 다르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계산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본다더군요
지금 30대 아이들은 집값, 대출, 육아비, 노후 준비까지 짊어지고 삽니다.
저희가 살던 때보다 숫자가 훨씬 큽니다.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한 번 드리면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부모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먼저 따지는 시대이기 때문이겠지요.
머리로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가슴 한편은 조금 서운합니다.
우리는 돈보다 ‘마음’을 기다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세대 부모들은 10만 원이 필요해서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그 봉투 안에는
“엄마 아빠, 아직 저희가 자식입니다.”
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뉴스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제는 명절 용돈도 합의해야 할 사안이 되었구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구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혹시 우리가
너무 ‘받을 것’을 전제로 마음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요즘 저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너희 형편에 맞게 해라.”
“엄마 아빠는 괜찮다.”
자식이 눈치 보지 않고 오는 명절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봉투는 없더라도 웃음이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요?
세대가 바뀌면 효도의 방식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는 효도’를 배웠고
아이들은 ‘독립하는 효도’를 배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자식이 부모를 책임진다”는 말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부모도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더 현실적입니다.
섭섭함은 잠깐이지만
관계는 오래가야 하니까요.
뉴스 속 그 30대 부부를 보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아이들이 효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명절에 “엄마, 아빠.” 하고 먼저 안부를 묻는 그 목소리만은요.
돈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결국 그 한마디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