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by 김태선


예순이 되어서야 알았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젠가 또’가 아니라,

‘지금 아니면’이라는 것을.


몇 해 전부터, 여든이 훌쩍 넘은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딸 셋이랑 여행 한 번 가보고 싶다."


오 남매는 부모님을 모시고 매년 한 번은 여행을 한다.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생신 즈음해서. 가족 여행이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오 남매의 짝꿍들까지 합하면 12명의 대식구가 모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모두 합쳐 20명이 넘는 가족이 여행을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딸 셋과만 여행을 하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를 포함한 남자들과 며느리 둘 빼고

순수하게 네 모녀만의 여행을...


네 모녀 여행(성주 한개마을에서 한 컷)

이번에는 엄마의 소원을 꼭 들어드려야 할 것 같았다.

어렵사리 날짜를 맞췄고 여행지 선정과 계획은 맏딸인 내가 주도했다.

집에서 멀지 않고 엄마의 친정이기도 한 성주로 정했다. (외갓집이 그립기도 해서)

1박으로 펜션을 예약해 두고

주변 관광지를 천천히 구경하고

점심과 저녁에는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준 밥이라는 말처럼

음식 하나하나가 맛있었다.

연잎밥과 보리굴비 한 상

사진도 찍고, 옛이야기도 꺼내고, 별것 아닌 농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엄마의 얼굴이 그렇게 환하게 피어나는걸, 오랜만에 보았다.

"엄마가 너무 재미있었단다. 큰언니 계획이 너무 멋졌음..."

세 자매도, 엄마도, 모두 흡족한 여행이었다.

그날 우리는 약속했다.

“매년 한 번은 꼭 네 모녀 여행 가자.”

그 약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가 우리에게 언제까지 그 기회를 허락해 줄지 모르기 때문에.


친구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다.


여행과 겹치는 날에, 친구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고 마음만 전했는데, 오늘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다.

친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집에서 짐 정리하고 있어.”

그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지고 울컥했다.

친구를 위로하려다가 울뻔했다.

살아계실 땐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엄마의 물건들을 이제는 ‘정리해야 할 것’이

되었다는 친구의 말이 너무 서글프게 들렸다.

전화를 끊기 전, 친구가 말했다.

“엄마한테 전화 자주 해. 살아계실 때 많이 해. 후회하지 말고

이제는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엄마가 안 계시네..”


우리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과의 전화를 미루고,

다음에 뵈러 갈게요라고 약속하고,

내년에도 함께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당연한 시간은 없다.

돌아가신 뒤에야 더 잘해드릴걸, 한 번 더 안아볼걸, 그 말을 들어드릴걸…

후회하는 쪽은 늘 자식이다.

부모는 끝까지 괜찮다고, 다 이해한다고 말해주는데도.


전화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잘하지 않는다.

엄마도 이런 나를 전화 자주 안 한다고 핀잔을 하신다.

"내가 느그(너희)들 한테 큰걸 바라는 것 아니다.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그 작은 바람을 지나치고 들어드리지 못하는 불효를 하고 있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별일 없는 안부, 오늘 뭐 드셨는지, 날씨가 쌀쌀하니 옷 따뜻하게 입으시라는 말.

사소한 말들이지만, 그 사소함이 우리의 하루를 이어준다.

부모님이

지금 곁에 계신다는 것.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행운이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풍수지탄(風樹之嘆)’ :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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