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전 애인과의 겪은 이별에 대한 사연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별 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이다. 배신감과 후회가 그 두 가지인데 통상 이별 뒤에 사람들은 슬픔과 함께 배신감과 후회감에 젖어들게 된다. 하지만 슬픔과 배신감 또는 슬픔과 후회감 이렇게 각자 따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 모든 감정이 한 번에 찾아오게 된다. 다만 배신감이 더 클 것인가, 후회감이 더 클 것인가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모든 걸 바쳐 사랑하고 진심으로 대한 사람이 자신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떠나 버린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배신감을, 준 것보다는 받은 것이 많고 아낌을 주기보단 아낌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에게는 후회감을 가지게 된다. 말은 쉽지만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이 이런 감정이 가끔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는 것이다. 배신감에 심한 낙담을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입은 사람일지라도 어쩔 때는 복수를 다른 때는 처절하게 배신하고 떠난 사람과의 재회를 원하게 되기도 한다. 잘 해주지 못 한 과거가 한스럽고 후회감이 너무 큰 나머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다가도 자신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하고 떠난 그 사람을 원망하고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딱 잘라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배신을 당한 사람이 용서와 재회를 원하기도 하고 전 애인에게 모든 걸 주지 못 해 후회하던 사람이 복수와 전 애인의 불행을 생각할 때도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건 복 잠함을 떠 올렸을 때 동시에 생각나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한다.
최근 이별을 통보받은 K양은 후자에 속한다. 남자 친구가 그렇게 허무하게 이별을 말할 때까지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둘의 관계를 걱정하지도 않았고 잘 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정말 생각하지도 못 한 순간에, 남자 친구가 이별을 고했고 그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 두 사람을 남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이미 K양의 사연을 읽어보면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그리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징후가 있었다. 줄어든 남자 친구의 연락, 통화시간, 애정표현 등등. 남자 친구가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지 아니면 자연스레 마음이 식은 것인지 알 방도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남자 친구의 마음이 K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K양은 그런 남자 친구의 행동을 이별의 징후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지나갈 기우라고 여긴 듯하다. 사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실제로 헤어지고 싶다, 이별하고 싶다, 마음이 식은 것 같다, 마음이 떠나고 있다 라고 자신의 애인에게 직접 적으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런 확실하지 못 한 감정이 반복이 되고 누적이 되다 어느 순간 터져 버릴 뿐이다. 다만 그 징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뿐.
배신감을 느낀 분들의 사연을 읽어보면 읽기만 하는 나로서도 얼마큼 상처받았을지가 느껴질 때가 많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최선을 다했는지, 어떤 진심 어린 마음을 주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들의 진심과 사랑이 헌신짝처럼 버림을 받았는지에 대한 사연 말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으로 쓴 글에도 배신하고 떠나간 전 애인에게 여전히 애증이 남아 있다는 거다.
K양의 경우는 후회가 더 남은 쪽이다. K양의 사연 속에는 자신이 전 남자 친구에게 잘 해주지 못했는지, 어떤 점을 못 해줬는지, 남자 친구가 어떤 점을 서운해했는지 순서대로 나열되어있다. 하지만 K양 사연의 어디를 읽어봐도 전 남자 친구가 K양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물론 둘이 사귀면서 싸우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K양의 사연에 그런 글들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보통 연인들이 싸우고 화홰하는 수준에서 마무리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 마디로 서로 티격태격했지만 화홰하고 다시 잘 사귀는 그런 보통스러운 연애를 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러니 K양의 사연에도 없지만, 있다고 할 지라도 직접적인 이별의 계기라고 볼 수도 없을 듯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전 남자 친구가 K양을 배신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저 전 남자 친구가 K양에게 나쁘게 한 짓은 K양이 예상치 못 한 상황에 이별을 통보한 것뿐이다. 그리고 사연이 K양의 시각에서 써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 자신이 전 남자 친구에게 준 상처들에 관한 내용은 상당수 빠져 있을 수도 있다. 물론 K양이 의도적으로 전 남자 친구에게 준 상처들을 골라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사연을 읽을 때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는 말을 적용하고 사연을 읽을 뿐이다.
이미 말했지만, K양은 후회가 남은 쪽이다. 사연을 읽어봐도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어떻게 잘 해주었는지, 자신이 어떻게 남자 친구에게 기대고 의지했었는지가 내용의 시작이다. 전 남자 친구는 K양이 의지할 수 있게 언제나 옆에 있어주었고 그녀의 투정도 받아주고는 했다. 전 남자 친구는 아마도 K양이 힘들 때 힘이 돼주려고도 노력했을 것이고 다른 남자들처럼 그저 들어주기보단 도 넘은 충고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K양은 어땠을까, K양의 사연은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어떤 힘든 상태에 있었는지에 더 주안점이 가 있다. 분명 남자 친구도 군대, 학교, 취업, 집안 사정 등등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다. K양이 말했듯 그저 위로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었을 뿐 이듯이 전 남자 친구도 분명 그런 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몇 번을 말하지만 남자가 감정 표현에 서투를 뿐 감정이 없는 생물이 아니다- 하지만 이별을 통보하는 전 남자 친구의 입에선 자신은 K양으로부터 제대로 된 위로를 받고 있다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지나간 일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K양도 전 남자 친구도 힘든 시절, K양이 조금 더 전 남자 친구에게 신경을 더 기울였다면, 정말 괜찮은지 잘 버텨내고 있는지 신경을 썼더라면 전 남자 친구의 입에서 그런 뜬금없는 이별이 나왔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전 남자 친구의 상황이 바뀐 것도 있다. 전 남자 친구만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 남자 친구도 자신이 힘든 점이 있었다면 터 놓고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아무리 K양이 힘든 상황에 있다고 할 지라도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점, 특히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면 말이다.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자신의 마음이 식고 바뀌었다는 말로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건 긴 시간을 함께 해준 여자 친구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다. 게다가 그런 이별을 말 한 순간이 자신의 상황이 더 나아져 있을 때라면 이는 더욱 전 남자 친구의 행동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차라리 귀띔 정도라도, 자신이 마음이 힘들다 라고 한 마디라도 해줬어야 하는 게 맞는 행동이라고 보인다.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고 특히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힘들다는 말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말이다.
K양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처럼 시간을 보내며 잊으려 노력하는 것과 먼저 연락을 해 보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 사실 이별 후에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몇 가지 없다. 시간을 약으로 삼아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자존심은 잠시 놓아두고 진심을 담아 재회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 왜 전 남자 친구가 이별을 하고 싶어 했는지 K양이 보내 준 사연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예상하는 것처럼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고, 실제로 만날 수도 있고, 상황이 나아졌으니 K양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위에서 말한 것처럼 K양에게 힘들 때 의지하지 못하고 기대지 못했음에 스스로 상처받고 아파한 것이 이유라면 K양이 먼저 손을 내밀어 볼 만한 여지는 있다고 본다.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라면, 단순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K양과의 이별을 선택한 것이라면 힘들겠지만 잊으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어느 쪽이 되었든, 여자와 관련된 이유로 이별을 선택한 것이라면 그 전 남자 친구 깨끗하게 잊었으면 한다.
다만 그런 것이 아닌 K양이 미처 신경 써주지 못했음에 상처받고 둘의 관계에 무감각해지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연대감이 부족하다 느끼게 됐다면 이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뜻을 내 비춰 보길 바란다. K양이 정말 후회가 되고, 아쉬움이 남았다면, 그 후회를 하게 만든 자신의 행동을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그저 후회만 하기보단 무언가 후회를 상쇄시킬 수 있는 행동이 수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행동들이 어떤 것인지는 아마 K양이 더욱 잘 알 것이라 생각이 든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 쉽지 않은 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만약 K양이 후자를 선택한다면 전 남자 친구의 쌀쌀함과 더 큰 상처로 남게 될지도 모를 결론을 예상하고라도 먼저 연락을 해 보길 바란다. 사람의 마음에 남는 후회의 양은 얼마큼 최선을 다했느냐 못 했느냐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에세이 : 사랑을 하는 걸까 연애를 하는 걸까
저자 : Ko Ho
http://www.bookk.co.kr/book/view/20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