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님, 필립 피셔라는 투자를 하시게 되면 꼭 알아 두셔야 할 투자자 입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투자 철학을 설명하면서 “나는 85%는 벤저민 그레이엄, 15%는 필립 피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표현에는 그의 투자 인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싸게 사서 손실을 피하는 법’은 그레이엄에게서 왔다면, ‘정말 좋은 회사를 골라 오래 가져가는 법’은 필립 피셔에게서 왔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이 “나머지 15%”를 만든 사람, 필립 피셔의 투자 철학을 책의 한 장처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필립 피셔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숫자 위주의 전통적인 가치투자자들과 달리, 그는 질(質) 중심, 성장 중심, 그리고 장기 보유를 강조한 투자자였습니다. 워런 버핏을 포함한 많은 저명한 투자자들이 “피셔의 책을 읽고 내 사고방식이 바뀌었다”고 인정합니다. 대표 저서인 『보통주와 특별한 이익(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은 특히 “좋은 회사를 깊게 이해하고, 아주 오래 들고 가는 투자”라는 개념을 세상에 심어 준 책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 많은 투자자들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정리한 공식과 기준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낮은 PBR, 낮은 PER, 청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종목 등을 찾아 넓게 분산 투자하는 방식이 주류였습니다. 이른바 “담배꽁초 주식”이라고 불리는, 한두 번 더 빨 수 있을 정도의 가치만 남은 싸구려 종목을 찾는 전략도 유행했습니다. 싸게 사서 조금만 오르면 파는, 아주 보수적이고 단기적인 접근법이었습니다.
필립 피셔는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싸냐, 비싸냐”라는 질문보다는 먼저 “이 회사가 정말 뛰어난 회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회사를 싸게 사서 조금 오르면 파는 것보다,
뛰어난 회사를 적정하거나 약간 싸게 사서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전략은 자연스럽게 “매수 후 보유(Buy and Hold)”로 정리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붙습니다. 아무 회사나 사서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실사와 분석을 통해 엄선한 소수의 우수 기업만을 사서 들고 가는 것입니다. 피셔는 광범위한 분산투자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이해 범위 안에서, 강한 확신이 드는 소수의 기업에 자본을 배치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 “우수한 기업”을 골라냈을까요? 여기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스커틀버트(Scuttlebutt) 방식입니다. 스커틀버트란, 원래는 “잡담, 소문” 정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피셔에게 스커틀버트는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현장에서 발로 뛰며 모으는 정성적·질적 정보를 뜻했습니다. 그는 재무제표와 공식 자료를 출발점으로 삼되,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피셔의 조사는 책상 앞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투자 대상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쟁사에게는 “저 회사는 어떤 회사로 보입니까?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이 진짜 위협적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공급업체에게는 “거래를 해 보니 어떤가요? 대금은 제때 지급하나요? 협력 과정에서 신뢰할 만한 파트너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객에게는 “이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써 본 경험은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의향이 있나요?”를 물었습니다. 업계 관계자, 전·현직 임직원, 협력사 등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모아, 그 기업에 대한 다각적인 그림을 그리려 했습니다.
이렇게 수집된 이야기는 재무제표가 보여 주지 않는 부분을 밝혀 줍니다. 숫자는 말해 주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회사는 업계에서 신뢰받는 회사인가, 내부 조직 문화는 건강한가, 경영진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들인가, 고객들은 진짜로 이 회사를 좋아하는가, 동종 업계 사람들은 이 회사를 경쟁자로서 경계하고 있는가. 피셔는 이런 요소들이야말로 장기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무제표보다 오히려 이러한 질적 정보에 더 큰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특히 그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많은 기업이 단기 이익을 높이기 위해 R&D 비용을 줄이려 합니다. 당장 손익계산서에 찍히는 숫자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미래의 경쟁력은 갉아먹는 행동입니다. 피셔는 이 점을 정확히 짚고, 업계 평균 이상의 R&D 지출을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했습니다. 단기간의 이익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인 혁신과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본 것입니다. 그는 이를 경영진이 장기적 관점을 갖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또한 피셔는 경영진의 역량과 정직성을 무엇보다 중시했습니다. 기업의 전략, 자본 배분, 인수합병, 신사업 진출 등 중요한 의사결정은 모두 경영진 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투자를 전제로 할 때, 경영진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고,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주주를 어떻게 대하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피셔는 경영진 인터뷰, 과거 의사결정 기록, 주주와의 소통 방식, 위기 시 대응 사례 등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숫자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경영진이 신뢰할 만하고 장기 지향적이라면 투자 후보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철학과 방법론은 그의 대표 저서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이 책에서 피셔는 “보통주(Common Stocks)에 투자하면서, 어떻게 ‘특별한 이익(Uncommon Profits)’을 얻을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그 답은 요약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기업을 깊이 이해할 것. 둘째, 산업 전체의 흐름을 함께 볼 것. 셋째, 많은 종목보다 소수의 우량 종목에 집중할 것. 그는 특정 기업의 숫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산업의 성장성, 경쟁 구도, 기술 변화 방향, 규제 환경 등을 입체적으로 보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크게 성장할 회사”를 미리 포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셔의 관점은 워런 버핏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버핏은 젊은 시절, 그레이엄의 방식대로 저PBR, 저PER 종목을 싸게 사는 투자를 주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기업의 질적 요소나 장기 성장성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평가’에 더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필립 피셔의 책과 철학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정말 뛰어난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서 오래 들고 가는 것이, 평범한 회사를 아주 싸게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 이후 버핏의 투자 스타일은 점차 변해 갑니다. 여전히 안전마진과 내재가치라는 그레이엄의 기초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점점 더 질 좋은 기업, 즉 강력한 브랜드,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 뛰어난 경영진,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 꾸준한 현금창출 능력을 갖춘 회사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시즈캔디 같은 대표적인 장기 보유 종목들이 이런 관점에서 선택된 사례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싸게 산 종목”이 아니라, “훌륭한 회사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오래 들고 간 종목”들입니다.
이 지점에서 버핏의 말, “나는 85%는 그레이엄, 15%는 피셔다”라는 표현이 선명해집니다. 그레이엄으로부터는 “얼마나 싸야 사는가”, 즉 안전마진, 재무제표 중심의 보수적인 가치평가를 배웠습니다. 피셔로부터는 “어떤 회사를 오래 가져가야 하는가”, 즉 질적 분석, 스커틀버트, 성장 잠재력에 대한 안목을 배웠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식 장기 가치투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필립 피셔는 투자 세계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싸게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회사를 골라야 하고, 그 회사를 깊이 이해한 뒤,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무제표 너머의 질적 정보, 즉 사람, 문화, 혁신, 평판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투자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기초 체력”을 가르쳐 주었다면, 필립 피셔는 “함께 성장할 파트너를 고르는 안목”을 가르쳐 준 셈입니다. 워런 버핏은 이 두 사람에게서 배운 것을 섞어, 좋은 회사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아주 긴 시간 동안 보유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결국 “그레이엄 85%, 피셔 15%”라는 말은 투자에서 “양(量)보다 질(質), 숫자보다 사람, 단기 수익보다 장기 성장”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15%는, 단지 작은 비율이 아니라, 버핏을 단순한 저평가주 투자자를 넘어 “위대한 장기 투자자”로 만들어 준 결정적인 조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