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 실험과 편견을 깨는 연습
사회적 기준을 자신의 삶의 틀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체계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가와 재단이 유난히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기준이니까요.”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봅시다.
어떤 집단이 아주 근사한 규범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그 집단과 아무 관련도 없는 당신에게 와서 그 규범이 얼마나 훌륭한지 열심히 설명한다고 상상해봅시다. 그 이야기를 듣는 당신은, 그 사람이 말하는 ‘사회적 기준’이 다소 특이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당신 역시,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는 사회적 기준을 잘 지키며 살아왔고, 스스로를 “평균적인 기준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사회적 동조와 관련된 사회실험 영상이 있습니다.
https://youtu.be/dtSVwIZcp6w?si=Xqm-TVMHtgzpUvT9
집단은 아주 작게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의 모임에서부터, 회사와 단체, 더 넓게는 국가와 전 세계 인류까지를 포괄합니다. 그리고 집단의 힘은 종종 개인의 판단을 조용히 무력화시킵니다.
집단을 이해할 때, 저는 ACT(수용전념치료)에서 자주 말하는 구분이 특히 유용하다고 느낍니다.
바로 개념적 자기(conceptualized self)와 맥락적 자기(contextual self)입니다.
가령 가족 집단을 떠올려봅시다.
“나는 동생을 괴롭힌 사람이니까
세상에서 조심하고, 낮추고, 자제하며 살아야 한다.”
이 믿음은 얼핏 도덕적 성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양심에서 비롯된 판단이라기보다, 특정 관계 질서 속에서 요구된 역할 규범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당위적인 개념을 부여할 때—즉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개념으로 살아갈 때—그는 집단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서 지속적인 긴장과 고통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개념적 자기의 방식입니다. 개념적 자기는 집단을 유지 가능하고 안전한 구조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동시에 개인을 정교하게 통제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인간이 집단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살아가기 시작할 때, 그 집단은 오히려 더 성숙한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통제하기 쉬운 구성원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은 안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실상은 정체된 ‘죽은 집단’에 가깝습니다. 반면 구성원 개개인이 자기답게 살아 있는 집단은 훨씬 더 큰 성장 가능성을 지닙니다.
집단의 규칙이 구성원을 통제하는 데 유리한 해답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규칙이 구성원보다 더 큰 목적이 되는 순간, 그 집단은 생명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집단 역시 ‘통제의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단에 속함으로써 얻는 이익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집단 자체가 가진 거대한 힘은 과소평가되곤 합니다.
집단은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들의 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합을 넘어서는 힘을 생성합니다.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집단 상황에서 책임이 분산되고, 집단 행동이 다층적 상호작용의 산물로 형성되기 때문에 그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입증해왔습니다.
집단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 안에서 형성되는 암묵적 규범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다소 추상적인 역동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는 실험들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Milgram & Sabini(1978)의 도시 규범 연구 〈On Maintaining Urban Norms〉에 포함된 지하철 현장 실험입니다.
밀그램은 도시를 자극 과부화 환경으로 보았습니다. 지속적인 타인, 소음, 정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암묵적 규범(보지 않기, 개입하지 않기, 요청하지 않기)을 내면화한다고 봤습니다.
실험에서는 요청자(실험자)가 일반 승객처럼 혼잡한 지하철에 탑승합니다. 그리고 특정 승객에게 정중하지만 이유 없는 요청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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