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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타로 Jan 17. 2021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이유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건 참 낯간지러운 일이다. 마치 사람을 처음 만났을때 이 사람을 어떤 말투, 어떤 톤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할 정도로 영 어색한 것처럼, 퍼블릭한 글쓰기도 영 어색하다. 특히 정보성 글이 아닌 에세이 류의 글은 더 그런 것 같다. 아무도 물어보거나 궁금해하지 않는 얘기를 혼자 떠드는 기분이 드니까. '이런 건 그냥 일기장에 쓰고 말지' 같은 생각에 쉽게 단념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일기도 종종 쓴다. 근데 내 일기는, 뭐랄까, 언제부턴가 글이라고 부르기 좀 부끄럽게 되어버렸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 글이기 때문에 감정을 쏟아내는 1차 목적에 충실하다. 어떤 개연성도 없이 의식의 흐름으로 써내려간 중얼거림에 더 가깝다. 시간이 지나고 읽어보면 그 때의 감정 상태가 어렴풋이 느껴질 뿐 의미가 소통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소통의 목적을 배제하고 쓴 글이라 그렇다는 게 내 결론이다.


글을 굳이 써야 할까.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쓰고 싶다는 게 지금까지 내 생각이다. 지금도 그렇다. 아마도 이 생각의 기원은 초등학교때로 거슬러올라갈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인권침해라고 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일기장을 담임선생님에게 제출하곤 했다. 심지어 잘 쓴 일기를 골라 반 전체에게 읽어주기도 했는데 당시 선생님이 내 일기를 자주 읽어주셨다. 10대 기간 전체를 아울러 뭔가를 잘한다고 인정받은 건 거의 그 기억이 유일했다.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 뭔가를 잘한다고 인정받으면, 그 임팩트가 굉장히 강하게 남는 것 같다. 나는 유일하게 인정의 기억을 심어준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업으로써의 글쓰기는 20대를 보내면서 깨끗하게 단념을 하게 되었다. 프로페셔널한 글쓰기를 할 만큼의 지식도 소양도 부족했고, 재능도 끈기도 부족하다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전업작가가 아니어서,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아도 돼서 (그 사람들에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는 동안 소셜 미디어가 전성기를 맞았다. 인플루언서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블로그나 유튜브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겼다. 직장인들에게는 부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부업으로써의 글쓰기가 떠올랐다. 방황하는 직장인이 된 나도 여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꾸준히 해보는 건 어떨까? 네이버 블로그를 열었다 닫았다를 서너번 했다. 매번 맛집이나 영화 리뷰를 몇 개 올리다 그만두었다. 부업으로의 글쓰기는 일종의 콘텐츠 생산 활동이고, 잘 팔리는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아쉽게도 나는 이쪽으로도 영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직업도 부업도 아닌, 일종의 취미로써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따로 있다. 기록하기 위해서, 그리고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다. 30대 초입에 접어들면서 얻은 좀 무서운 깨달음이 있다. 10대의 시간보다 20대의 시간이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지나간 시간의 세세한 부분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바쁘게, 숨가쁘게 살아내기 바빠서 그런 걸까. 늦게 전에 기록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 나라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글을 쓰는 건 일종의 정신적 행위다 보니,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유가 확장되고 날카로워진다는 걸 여러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똑똑해지고 싶다는 생각이나 지적 허영심은 좀 많이 내려놓은 상태인데, 그래도 현명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고는 싶다. 다시 말해 생각과 관점이 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글쓰기가 여기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관점을 가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주제 선정부터 막막하기도 하고 뭔가 재밌고 유익한 글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아예 안하고 있지만, 나를 위한 글쓰기이니 만큼 그냥 나한테 재밌었으면 좋겠다. 쓰는 시간, 그리고 나중에 쓴 글을 읽어보는 시간 모두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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