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마릴린 Nov 11. 2015

알바니아 여행의 전형_알바니아→마케도니아.

서쪽이고 싶은 동쪽, 발칸_[22]

지로카스트라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오흐리드로 이동할 방법을 궁리하며 보냈다. 반질반질한 돌길을 걸으며, 오스만 양식의 하얀 집들을 올려다보며, 언덕 위 성채에 올라 넓게 펼쳐진 발 밑 세상을 내려다보는 와중에도 그 생각은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호스텔의 유일한 스탭인 리사에서 시작해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폴란드 친구 아시아, 저녁 밥 멤버 중 하나인 대만에 사는 영국 아저씨 마크, 바자르의 기념품 가게 점원 아가씨, 북부 떼띠에서 만난 후 저녁 식당에서 삼 일 연속 만난 벨기에 커플, 구시가 여행자 안내 센터 직원들, 아랫동네 큰 버스정류장의 매표소 아저씨까지.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단편적이고 극히 주관적인 정보를 긁어모은 나의 머릿속은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었다.


마크가 가지고 있는 7년 전에 출판된 론리플래닛 알바니아 편에는 지로카스트라-코르챠 구간을 '패스'라고 부르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울퉁불퉁 꼬불꼬불 험난하고 힘든 구간이나 그에 따른 보상으로 경치는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총 7시간 걸림'

질문 : 코르챠 → 마케도니아 가는 방법은?

대답 : 안개 속.

호스텔 스탭 리사에게 물으니 코르챠로 가는 길은 말도 못하게 험하니 그 길로 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질문 : 당신은 지로카스트라 → 코르챠를 가봤나?
대답 : 아니.

큰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에 버스표를 파는 키오스크에 물었다. 코르챠로 가는 길은 도로 상태가 엉망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니 엘바산으로 가라고 했다. 하루에 한 번, 아침 6시에 사란다에서 출발한 엘바산 행 버스가 7시에서 7시 반쯤 지로카스트라를 지나간다고 했다.
질문 : 엘바산 → 마케도니아는 어떻게 이동하나?
대답 : 엘바산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서 알아볼 것.

<가보지 않은 곳의 지도를 들여다 보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지만...>


아시아에게,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씻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어. 여행자 센터 앞에 도착했을 때는 6시 10분.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브트린트로 갈 때 탔던,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버스는 없더라고. 여행자 센터 앞에 큰 호텔 하나 있잖아? 어쩔 수 없이 그 호텔 리셉션 데스크에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는데, 6시 30분이 넘어도 택시가 오지 않는 거야. 밤을 새운 것이 분명한 그 호텔 직원과 함께 목이 빠져라 택시를 기다렸지만 소용없었어. 6시 40분이 다 되어 갈 무렵, 광장 앞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금방이라도 주방에 들어가 일을 해도 될 것 같은 복장을 하고는 낡은 빨간색 쿠페를 몰고 와 광장에 주차를 하더라. 차에서 내리는 그를 붙잡고 아래 큰 도로까지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그 남자는, 나만큼 초조하게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가여운 호텔 직원에게 무슨 일인지 묻더라고. 그러더니 하는 말이,

"잇츠 낫 포씨블."
버스는 그렇다 쳐도, 택시까지 안 올 줄 누가 알았겠어.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어. 내가 하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 그 남자 보기에도 딱해 보였나 봐. 한 오 분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애간장을 다 태우고 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고는 타라고 하더라. 그 작은 차의 조수석에 배낭을 채 벗지도 못하고 구겨 앉아서 구불구불 산길을 신나게 달려 내려왔지.

근데 있잖아, 그렇게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상황에서도, 대로변 넓은 초지가 아침 안개에 싸여 있는 것이 보였어. 그 누런 들판에는 생일 케이크의 촛불처럼 아름드리 나무들이 박혀 있는데 희뿌연 안개를 뚫고 들어 온 아침 햇살이 세상에 너무나 찬란하게 나무에 내려 앉아 있는 거야. 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말로 야속해서 헛웃음이 나오지 뭐야.


하여간, 빨간 쿠페의 남자는 주유소 건너 버스 정류장에 6시 50분 나를 내려 주고는 티라나행(아마도 그는 내가 티라나로 가는 줄 알았나 봐) 버스 기사에게,

"이 여자 티라나 간대, 잘 태우라고"

정도 되는 말을 전하고는, 나를 향해,

"오케이?!"

라고 말하며 엄지 손가락을 번쩍 들어 보이고는 붕~하고 떠나 버렸어. 사실 그의 차를 타고 마을을 내려오면서, 이 남자가 돈을 달라고 하면 얼마를 주어야 할까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을 했었거든. 그런데 돈의 'ㄷ'자도 꺼내지 않고 짧고 간단하게 'OK?" "OK!"가 다였지 뭐야. 창피하게스리.

차에서 구르듯이 빠져나온 나는 곧바로 버스표를 파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키오스크에 갔어. 어제 우리가 버스에 대해 물어봤던 키오스크 있잖아. 그렇게 생긴 것이 반대편에 하나 더 있더라고. 어제의 그곳과 달리 이곳은 좀 더 '공식적인' 매표소 같은 분위기였어. 그래 봤자 간이 상자에 불과하지만 말야. 우당탕탕 그곳으로 달려가서 엘바산 행 버스가 벌써 지나가 버렸나 물었다? 그랬더니 세상에 뭐라는지 알아? 엘바산으로 가는 버스는, 우리가 어제의 건너편 키오스크에서 들었던 대로, 하루 한 대가 있고 사란다에서 출발하는 게 맞지만, 아침 7시가 아니라 오후 3시라는 거야. 미치고 환장하고 펄쩍 뛸 노릇이지 뭐야. 진짜냐고, 어제 길 건너에서 당신과 같은 일을 하는 남자가 분명히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버스가 이곳을 지나가니, 늦어도 7시에는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공식적'으로 보이는 매표소 남자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오후 3시라는 말만 반복했어.

버스 정류장에는 막 출발하려는 버스가 두 대 있었는데, 하나는 티라나 행, 다른 하나는 코르챠 행, 둘 다 7시 출발이었어. 빨간 쿠페의 남자 덕에 내 배낭은 진작부터 티라나 행 버스 짐칸에 실려 있는 상태였고, 나는 말 그대로 패닉 상태가 되어 버렸지 뭐야. 티라나 행 버스와 코르챠 행 버스는 15미터쯤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는데, 부릉부릉 시동을 건 양쪽의 버스 기사 두 양반이 차에서 내려 나에게 빨리 버스에 타라고 이쪽 저쪽에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티라나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되면 티라나에서 하루 자야 하잖아. 그렇다고 코르챠로 가고 싶지도 않았어. 쉬코드라에서 떼띠로 갈 때 경험했던 지옥 버스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거든. 선택을 앞두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 해서 일 분 정도였는데, 와, 정말 무슨 억겁의 시간 같이 느껴지는 게 아마 그 일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내 몸의 세포가 일억 개 정도는 죽었을 거야.


결국 나는 티라나 행 버스 짐칸에 실려있던 배낭을 꺼내 코르챠 행 버스에 실었어.

의문에 쌓여 있던 지로카스트라-코르챠 패쓰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지루하고 볼 것 없는 길'로 밝혀졌어. 울퉁불퉁하지도, 식겁하게 무섭지도, 피곤하지도 않더라고. 시작부터 끝까지 포장도로였고, 창 밖 풍경에는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없었어. 차라리 사란다 갈 때의 그 길이 더 흥미롭다면 대충 상상이 되겠지? 게다가 7시간이 걸린다더니, 중간에 한 번 쉬었는데도 12시 10분에 코르챠에 도착했어. 네 시간 반이 걸린 거야.


코르챠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바로 옆에 포그라데치로 가는 12시 30분 버스가 있어서, 그 버스에 짐을 실어놓고는, 내가 뭐했게? 내 손목시계 고장 났잖아. 코르챠 버스터미널 앞이 꽤 큰 재래시장이었는데 거기서 일 유로를 내고 시계를 샀지 뭐야. 12시 30분이 되자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고, 내가 포그라데치에 내린 시간은 1시 10분. 그런 다음, 국경 근처까지 간다는 푸르곤을 탔는데, 다행히 푸르곤 안에 영어를 아주 잘하는 현지인이 타고 있어서, 게다가 그 영어를 아주 잘하는 현지인이 무려 푸르곤 운전기사의 친구여서, 그들의 호의로 국경 바로 코 앞에서 내릴 수 있었어.

그리고는 걸어서 알바니아 국경과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었어. 국경과 국경 사이에서 독일 여행자(그녀는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로 넘어가는 중이었어)를 만났는데 그녀 말이 국경을 넘자마자 있는 도시인 스베티 나움에 가면 오흐리드 행 버스가 무지 많다는 거야. 헌데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자 곧 커다란 버스가 한 대가 들어오더니, 운전기사가 나보고 안 탈거냐고 묻지 뭐야? 나는 되려 '어디 가는 버스냐'고 물었더니, 세상에나, 오흐리드로 가는 버스래. 기가 막히지? 국경에는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것 또한 잘못된 정보였지 뭐야. 버스 기사에게 버스 시간표를 물으니 매 두 시간마다 버스가 있대. 오호.

버스를 탈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그냥 보내고 스베티 나움까지 걸어갔어. 어떤 곳인지 궁금했거든. 마을의 정식 입구까지는 4킬로미터를 걸어야 하지만 1킬로미터쯤 걸으면 개구멍이 있다고, 입국심사관 남자가 귀뜸을 해주었어. 개구멍은 개구멍답게 찾기 조금 힘들었지만 어쨌거나 스베티 나움에 들어갈 수 있었지. 휴양 도시답게 그곳은 아주 아름다웠어. 나중에 오흐리드에 도착하고 나서 보니까, 스베티 나움은 오흐리드 구시가에는 없는 모래 해변을 가지고 있더라고. 호수는 오후 햇빛을 받아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태양을 향해 벌거벗고 누워 그 충만한 기운을 받고 있었지. 그곳을 둘러보고 이제 오흐리드로 가야겠다 싶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오흐리드로 가려는 택시 기사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더라. 나는 버스를 탈 생각에 그들을 보며 그냥 씰룩 웃고 말았는데,  그중 한 남자가 버스 요금이랑 똑같은 값에 택시를 태워 주겠다는 거야. 내 귀를 의심했지만 진짜였어. 헌데 내가 가진 돈은 알바니아 돈 남은 거 몇 푼에 유로 조금이었고, 마케도니아 돈은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알바니아 돈으로 택시 값을 내겠다고 했더니 그는 한참을 구시렁대다가 알았다고 하더라고. 알바니아 돈도 처치하고, 버스와 같은 값을 내고 40분 만에 오흐리드에 도착할 수 있었어. 그러고 보면, 코르챠행 버스를 탄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다 술술 풀렸던 것 같아. 지옥의 코르챠 패쓰를 선택하라고 격렬하게 독려했던 네 덕분이라고 우선 해 두자.

나는 지금, 오흐리드 구시가의 크고, 싸고, 위치 좋은 아파트에서 파스타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이것을 쓰고 있어. 아참, 마케도니아가 알바니아보다 물가가 싸서 정말 놀라워. 담배 사느라 돈을 많이 썼다는 네 얘기가 이해가 돼. 세상에 담배 한 갑에 일 유로라니.

그나저나, 티라나에 잘 도착했니? 알바니아 북부 알프스로 가는 법 잊지 않았지? 미스테리한 그 길 역시 실은 굉장히 쉬워. 그곳에 간다면 분명 알바니아를 사랑하게 될 거야.

7월 29일.
오흐리드에서 희영.



<이날의 첫번째 기도 소리가 아침 이슬과 함께 마을을 적셨다_알바니아 지로카스트라>


<한때 코르챠 패스라고 불렸던 험난한 산길에는 매끈한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다_코르챠 가는 길>


<누런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다음 나타난 푸르름_코르챠 가는 길>


<신비에 쌓였던 코르챠는 산골 마을이 아니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래시장_알바니아 코르챠>


<잘가요_알바니아 국경에서 보이는 오흐리드 호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