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사람들: 강호의 고수.
지난 겨울 추위를 피해 푸껫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요란한 빠통에서 일주일을 보낸 나는 까따로 옮겨 다시 일주일을 보냈다. 내가 예약한 까따의 숙소는 90년대에 지어진 구식 호텔로 해변에서 꽤 떨어져 있었는데, 다른 손님에 비해 길게 묵어 배려를 받은 것인지, '호텔 그룹'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묶인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리조트'에 방을 배정받았다. 구식 호텔과 리조트 외에 또 다른 이름의 호텔까지 총 세 개의 호텔이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혹은 옆 건물에 붙어 모여 있었기에 각 호텔의 수영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조식 식당이 하나로 통합 운영되어 아침마다 붐비는 단점도 있었다.
아침 식사는 뷔페식으로 맛없는 커피와 질긴 크로와상, 얇은 식빵 등 일명 '서양식'보다는 채소 볶음이나 볶음밥, 죽 등이 좀 더 나은,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중급 호텔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이런저런 구색은 갖춘 곳이라 주문을 받으면 즉석에서 달걀을 부쳐 주고 국수를 말아 주는 곳이 있었고 휴일도 없는지 일주일 내내 한 요리사가 나란히 자리한 그곳을 맡아보았다. 요리사는 땅딸막한 체구와 호밀빵 껍데기처럼 갈라지고 패인 넓적한 얼굴, 그리고 유난히 투박하게 생긴 손을 가진 중년의 남자로 굵은 목 아래 유니폼 단추를 단단히 채우고 어쩐지 심통이 난 듯한 얼굴로 서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떡인 후 프라이팬을 가스불 위에 올리거나 채망에 국수를 담갔다. 그랬기에 첫날 아침 그가 말아 준 국수를 받아들었을 때는 어쩐지 얻어먹는 그래서 조금은 죄스러운 기분이 들고 말았는데 다행히 그런 기분은 그날 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나의 얼굴을 알아보고 싱긋 웃어 보였고, 삼 일째 아침에는 내가 지난 이틀 동안 주문했던 국수(고기 빼고, 채소 많이, 국수 조금)를 기억하고 있다가 "똑같이?"라고 그 짧은 씽긋 웃음과 함께 물어왔다.
어느 날 아침, 국수를 주문하려고 그 앞에 서 있을 때였다. 영국 억양의 한 중년 여성이 그에게 수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국수를 기다리며 지켜본 바로는 그곳에서 만들어 주는 달걀 요리는 오믈렛이나 달걀 프라이처럼 팬에 기름을 두르고 지져내는 것들 뿐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역시나 우리의 무뚝뚝한 요리사의 반응은 특별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왠지 사람을 좀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주문을 마친 그녀 역시 옆에 서 있던 나를 향해 전 세계인이 무안함을 달래고자 할 때 하는 바로 그 행동(눈썹을 올림과 동시에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며 어깨를 순간적으로 짧게 올렸다 내리는)을 해 보였다. 그녀가 이곳에서 맞는 첫 아침임이 분명했다.
요리사는 등 뒤에 있는 문을 통해 주방으로 사라졌다가 프라이팬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응? 프라이팬? 냄비가 아니라? 게다가 그 프라이팬이라는 놈은 너무나 앙증맞은 크기여서 달걀을 부친다면 딱 하나 부칠 수 있는, 14-16센티미터쯤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손에 들린 프라이팬을 보자마자 그가 그녀의 주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심통 난 얼굴로 조리대 앞에 자리를 잡더니 망설임 없이 프라이팬에 물을 받아 불에 올렸다. 손님 몇 명이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우리 주위에 서 있었기에 물이 끓을 때까지 그는 다른 프라이팬을 흔들어 오믈렛을 굴렸고 국수를 말았다. 물이 끓자 그는 달걀 두 개를 톡톡 깨 넣고는 이내 고개를 들어 나에게 물었다. "똑같이?" 나의 신경은 온통 그 얕은 물에서 달걀이 과연 프라이팬 바닥에 달라붙지 않고 잘 있을까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건성으로 "네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공기 방울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끓고 있는 물속에 그 연약한 달걀 두 알을 내버려 둔 채 나의 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기 빼고-채소 많이-국수 조금'을 순서대로 채망에 담아 솥에 걸쳤다. 그리고는 다시 그 프라이팬으로 손을 뻗었다. 드디어 건져낼 시간인 것이다. 그는 기름이 묻지 않은 새 뒤집개로 달걀을 건져 뒤집개를 위 아래로 몇 번 흔들어 물을 털어내고는 달걀을 접시에 올렸다. 놀랍도록 동그랗고 매끈한 예쁜 수란이었다.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냉장고를 부탁해’가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이름만 들어도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요리사들이 수란을 만들 때면, 곰탕을 끓일 때나 쓸 법한 커다랗고 깊은 솥에, 물을 몇 리터나 받아 끓인 다음, 물을 마구 휘저어 회오리를 만들고, 신중히 달걀을 깨 넣고는, 온 정신을 집중해 건져낸다. 그 프로그램에서 수란이란 것은 본디 그렇게 만들어진다. 요란하게 만들어진 수란이 물 밖으로 건져 올려질 때면 매번 엄청난 탄성이 울려 퍼지고, 요리사들끼리 서로 칭찬하며 추켜 세운다. 만들기 정말 어려운 거라고, 자기는 아직도 수란이 싫다고.
이제 나는 조금 겸손한 마음이 되어 그가 수란에 이어 바로 카운터에 올린 나의 국수를 받아들고 자리에 돌아와 여느 아침과는 다른 마음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려는데 출입구 근처에 앉아 있던 그 중년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인사를 건네며 그녀에게 수란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완~벽했어!!"
<까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