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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즐기는 느림의 미학 #1

by 호텔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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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불기 시작한 '걷기 열풍'은 지금까지도 지칠 줄 모르는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동력을 가진 교통수단이 빠름을 의미한다면 두 발을 직접 움직여야 하는 걷기는 느림을 의미한다.


속도가 곧 생명이고 빠름이 선(善)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느림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욕망임을 자각한다면, 걷는 행위가 자연으로의 회귀이자 진정한 의미의 휴식임을 깨닫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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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걷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제법 많다.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한 수원도 그 중 하나다.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은 서울의 축소판으로 불릴 만큼 큰 도시지만, 동양 성곽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화성이 있어 도보여행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빽빽한 빌딩숲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성곽길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조선의 흔적을 따라 걷는 것이 메인 코스이기는 하나, 이것만이 전부라는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품고 있는 수원에는 도보여행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장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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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고, 방향보다 중요한 건 여유다. 대도시가 품고 있는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고 싶다면 혼자여도 좋고 함께여도 좋은 수원의 길을 걸어보자.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데 필요한 건 세상을 향한 약간의 호기심과 생경한 길을 몸으로 기억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편안한 신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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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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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꽃처럼 피어 있는 수원화성은 수원 여행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팔달문 주변을 제외하고는 전 구간이 이어져 있어 성곽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성을 한 바퀴 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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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곽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원래 수원화성은 도시 전체를 일컫는 말로, 성곽은 도시의 방어능력을 높이기 위해 만든 시설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조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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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는 당쟁에 휘말려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겼다. 당시 화산은 조선 최고의 명당이자 수원부 읍치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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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의 묘가 조성되면 10리 안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이사를 가야 했던 탓에 백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정조는 읍치를 팔달산 아래쪽으로 옮긴 뒤, 그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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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걷다가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7개의 석조아치 위에 문루가 세워진 화홍문이다.


수원화성 안에는 북쪽과 남쪽에 수문이 세워져 있는데, 화홍문은 북쪽에 있는 수문인 탓에 흔히 '북수문'으로 불린다. 이 문을 지나 몇 십 보만 걸으면 동북각루(방화수류정)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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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루는 성 밖의 동태를 살필 수 있도록 군사적 요충지에 세운 건물로, 화성에는 총 4개의 각루가 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팔각의 정자로 만들어진 동북각루는 동북쪽의 군사지휘부 역할을 했지만,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평소에는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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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 뒤쪽, 즉 성 바깥쪽에는 반달 모양의 연못이 있다. 용연(龍淵)이라 불리는 이 연못은 주변의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호화로운 운치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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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를 등지고 완만한 언덕을 따라 걷다보면 저 멀리 동장대(연무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장대는 군사들을 훈련하고 지위하는 곳으로, 동장대는 수원화성에서 가장 위용 있는 시설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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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이 얹힌 건물은 벽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동장대 옆 너른 잔디밭은 정조의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다. 현재는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인 국궁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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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대 뒤쪽으로 이어진 성곽길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동북공심돈으로 연결된다. 공심돈은 성곽 주변을 감시하는 동시에 방어시설로 활용되는 건물이다.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동북공심돈은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통해 꼭대기에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어 '소라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60보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동북노대 역시 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시설로, 이 건물을 지나면 곧바로 창룡문이 나타난다.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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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의 동쪽 대문인 창룡문은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옹성은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창룡문 뿐만 아니라 나머지 3개의 문에도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창룡문에는 다른 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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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과 옹성 사이에 있는 벽면에 새겨진 선명한 한자가 바로 그것이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 각 지방의 기술자들을 불러 모은 정조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창룡문 벽에 새겨진 한자는 사람의 이름, 즉 공사 실명제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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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에서부터 팔달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평지 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곽길 가운데 난이도가 가장 낮다. 탁 트인 전망이 품은 평화로운 풍경만 보면 잘 만들어진 산책로 같지만, 성곽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모두 군사시설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 있는 성곽들이 모두 도시를 보호해 주지는 않았다. 성의 크게 행정적인 성과 군사적인 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읍성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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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은 규모가 큰 대신 방어시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읍성을 버리고 산성으로 도망쳤다. 그래서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읍성 안에 있는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었다. 정조의 명으로 수원화성의 설계를 맡았던 정약용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벽돌을 이용해 튼튼한 성곽을 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외적이 침입했을 때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는 대신, 힘을 모아 맞서 싸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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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구간에는 포루, 치(치성), 봉돈, 각루 등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다. 이중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불과 연기로 신호를 보내는 봉돈이다.


수원화성의 통신시설인 봉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봉수대와 성벽이 합쳐진 형태로 만들어졌다. 불을 피워 올릴 수 있는 화두는 총 5개로, 봉화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위급 상황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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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돈을 지나 동남각루에 다다르면 완만하던 성곽길은 가파른 비탈길로 변한다. 폭이 좁은 돌계단을 내려가면 성곽길은 사라지고 시장골목과 수원천이 나온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 팔달문 관광안내소까지는 성곽길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일단 남수문을 건너야 한다. 화홍문에서 흘러내려온 수원천이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남수문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가 2012년 6월 복원되었다.



팔달문에서 화서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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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문을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걸어 가다보면 위풍당당한 팔달문이 나타난다.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팔달문은 수원화성의 남쪽 대문으로, 옹성 중앙에 출입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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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옹성을 마주보고 섰을 때 왼쪽 방향으로 가면 팔달문 관광안내소가 나타난다.


끊어졌던 성곽길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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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으로 이어진 성곽길은 경사가 꽤나 가파르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남치와 남포루를 지나 서남암문까지만 오면 힘든 구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암문이란 적에게 들키지 않고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든 비밀 출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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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있지만 서남암문은 조망이 좋은 곳에 있다. 또한 이곳은 서남각루(화양루)로 가는 통로 역할도 겸하고 있다.


암문 밖으로 이어진 좁고 긴 통로 끝에 세워진 서남각루는 수원화성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동북각루와 마찬가지로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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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각루를 둘러본 뒤 다시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서장대(화성장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팔달산 정상에 늠름하게 서 있는 서장대는 장수가 군사를 지위하던 곳으로, 사방 100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성 안팎의 동정을 파악하는데 유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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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 뒤에는 팔각형의 서노대가 있다. 높은 위치에 세워진 노대는 적을 향해 쇠뇌(활보다 멀리 쏠 수 있는 장거리 공격용 무기)를 쏘거나 오방색 깃발을 흔들어 명령을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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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문방향으로이어지는길은점점완만해진다. 서포루를지나면도착하는서북각루는산이휘어진곳의돌출된성벽위에마련된건물로, 성 밖의상황을조망하고휴식을취하기위한목적으로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약 100여 미터떨어진곳에는화서문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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