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경기 순환의 반복적 패턴
태풍의 눈
Airbnb가 태풍을 몰고 온 이래로 호텔 산업은 변화의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그동안, 이른바 글로벌 브랜드들과 대형 OTA들의 연합이 독점해왔던 전 세계 호텔 산업의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준화된 상품들로 천편일률화 된 호텔 산업에는 Airbnb의 등장 이후 다양한 대체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Airbnb는 이처럼 표준화된 상품들이 물량과 가격에 의해서만 유통되던 호텔 산업에 P2P 기반의 거래를 도입하여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사실, 호텔 산업에서 표준화된 상품을 다각화하려던 노력은 이미 1980년대에 이른바 부티크 호텔을 통해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부티크 호텔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실패로 돌아간 바 있습니다. 오히려, 표준화된 상품을 근간으로 했던 글로벌 브랜드가 부티크 호텔의 후광을 흡수하면서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왜곡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짧은 수명을 다하고 사라져 가는 듯했던 부티크 호텔은 최근 다시 생명력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실질적인 파산 상태였던 부티크 호텔의 출발점 Morgans Hotel Group은 결국 SBE를 거쳐 Accor의 품에 안겼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비단 빈사 상태였던 부티크 호텔이 기사회생한 것 말고도 Airbnb가 몰고 온 태풍은 호텔 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폭발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표준화된 상품의 독점적 유통을 통해 과거와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글로벌 브랜드들은,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전통적인 호텔이 아닌 다른 상품들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호텔 산업의 정점에 위치한 Marriott은 Moxy를 통해 호스텔 시장에 진입했고, Accor와 Hilton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유럽의 맹주 Accor는 더 나아가 공유주택과 공유오피스 시장으로까지 영토를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한편, 주택의 단기 임대차 모델을 표방하며 출발했던 Airbnb는 최근 전통적인 호텔 상품까지 공식적으로 유통하기 시작하며 견고했던 호텔 산업의 가치사슬을 더욱 거세게 뒤흔들고 있습니다. Airbnb가 호텔 상품을 유통하는 것이 이처럼 거창하게 언급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입장벽이 높았던 과거의 호텔 산업과 달리, 대체재들이 호텔 산업에 쏟아져 들어오며 무한 경쟁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저가 숙박시설들에 눈을 돌린 인도의 Oyo나 한국의 야놀자가 보여준 가파른 성장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대변하는 사례들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시장의 진입장벽이 허물어지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면, 모두가 성문 밖에 흩어진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리고 경쟁이 과열될수록 조금이라도 더 많은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마케팅에 투자하게 됩니다.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지금의 투자가 나중에는 풍성한 수익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규모의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경쟁자들을 정벌하는 것입니다. 제휴를 하기도 하고, 인수합병을 하기도 하고, 그냥 도태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게 된 거대한 경쟁자들은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혁신의 두 얼굴
일단,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산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더 많은 옵션이 생기는 데다, 더 좋은 가격에 소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은연중에 어느 한 편에 서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그 결과가 항상 해피엔딩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대 편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도 하고, 우리 편이 승자가 되었더라도 결국 자멸해버리는 경우 또한 있습니다. 쉐라톤, 웨스틴, W 등 고급 호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Starwood는 호텔 업계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로 유명한 SPG 멤버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소비자들의 팬덤도 금융위기 이후의 재정난을 해결해주지 못했고, Starwood는 2016년 Marriott에 인수합병되었습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경쟁은 생존을 위협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피를 말리는 일입니다. 그나마 파산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한 Morgans나 Starwood는 그래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어왔던 경우들입니다. 사실 이들의 도전은 성공의 문턱에 가까이 갔었습니다. 오히려 야심 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간 이들이 더 많습니다. 그들도 Morgans나 Starwood처럼 호텔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혁신적인 상품이나 유통 방식을 들고 나와 시장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으로 확장해갈 체질을 갖추지 못했고, 결국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근본적 차이점
Morgans나 Starwood처럼 기사회생했던 이들과 그렇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Morgans가 경쟁자들로부터 점유율을 빼앗아오기보다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Starwood의 경우 글로벌 브랜드와 호텔 REIT를 통해 소비자, 운영사 및 투자자를 연결하는 가치사슬을 구축함으로써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연결 창구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간 이들의 경우 혁신적인 시도를 전체 가치사슬에서 적절하게 포지셔닝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경쟁자들의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단순한 점유율 전쟁의 경우라면 규모의 경제를 이미 확보한 이들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결국 주저앉은 Starwood와 이를 인수합병하여 입지를 더욱 단단히 한 Marriott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인수합병 당시 Marriott과 Starwood의 호텔 상품들은 상당 부분 포지셔닝이 겹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이들만의 상황이 아니라 표준화된 상품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대형 글로벌 브랜드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다만, 고급 브랜드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Starwood의 경우 94%가 Marriott 계열 브랜드들의 포지셔닝과 중복되었던 반면, 상대적으로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Marriott의 경우 Starwood 계열 브랜드들과 중복되는 부분은 60%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포지셔닝이 중복된 브랜드의 호텔 객실수만 놓고 봤을 때, Marriott은 Starwood의 143% 규모였습니다. 즉, Starwood가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섹터에서도 Marriott이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근본적으로 비즈니스는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기 위한 활동이고, 기업은 이를 위해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현금흐름이란 이익을 의미하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매출이 늘어나는 동시에 비용이 줄어야 합니다. 유통기한이 하루인 상품을 판매하는 호텔은 매출의 변동성이 심한 반면, 자본집약적이면서 노동집약적인 특징으로 인해 비용 구조는 그렇게 탄력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018년 서울시 호텔업 전체를 두고 봤을 때 매출과 무관하게 끌고 가야 하는 고정비가 전체 운영비용의 60%를 넘습니다. 즉, 호텔 비즈니스에 있어 초기에 비용 구조를 적절하게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공격적인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만, 어느 시점이 되면 정상적인 비용 구조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때의 비용 구조는 매출의 변동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케팅 비용 지출이 축소되었을 때 매출이 어느 정도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일정한 가격과 효익의 상관관계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동일한 효익에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동일한 가격에 줄어든 효익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혁신적인 신생 기업의 착시 효과가 사라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실질 매출과 실질 비용이 결국 지속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호텔 산업을 거대한 태풍 속으로 몰고 갔던 Airbnb는 상장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전력 질주해왔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전망이 그렇게 밝지 않아 보입니다.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으로 투자자들의 관심 속에 상장에 성공했던 Uber의 실적에 투자자들은 실망했고, 다음 타자로 거론되던 WeWork는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Airbnb 또한 계속해서 상장을 미루는 상황이고, 갈수록 미래가 불투명해져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실질적인 매출과 비용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이며, 이들은 이 부분을 시장에 증명해내야 할 것입니다.
빈사 상태의 Hilton을 최악의 시기에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회생시킨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Blackstone은 최근 일본의 호텔 체인 Unizo를 인수하고자 우리에게도 낯익은 Lone Star와 치열하게 경쟁 중에 있습니다. 전세계 호텔 산업 최대의 투자자 Blackstone이 이미 상당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이른바 혁신 기업 Airbnb나 Oyo 보다,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는 Unizo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