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사소한 온도

by 윤슬


“나는 나중에 며느리하고 살 거다”

유쾌한 아버지는 살짝 뼈 있는 멘트를 가족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아들이, 자신의 의견에 공손함을 잃지 않으려 애교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럴 거면 한밤중에 티비 소리는 좀 줄여주시면 참 좋을 텐데요 ㅎㅎ”


임플란트 치료를 위해 제주에서 부모님이 잠깐 올라오셨다.

직장에서 회식이 있던 날 아들은 밤 12가 넘어 귀가했다.

이제 대학생이 된 자식들은 각자의 방에서 방학을 만끽 중이고 아내 혼자 조용히 현관으로 마중을 나왔다.

적막하고 깜깜한 집 안에, 부모님이 기거하시는 안방 쪽에서 티비소리가 그날따라 비교적 크게 흘러나왔다.

잠시 아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직장을 나가야 하는 아내가 걱정됐다.

건축이 오래된 집의 구조상 방음이 잘 되지 않아 아내의 수면에 분명 방해가 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완고한 성격을 아는 아들은 인사만 잠깐 드리고 물러났었던 날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식사자리가 혹여 불편해질까,

늘 그랬듯 나는 딸로써의 중재자 모드를 활성화시켰다.

“아부지, 그럴 땐 며느리가 딸이다, 내 딸이 내일 일을 나가는데 잠을 못 자면 안 되지. 생각하시고 배려를 조금만 해주세요”

아버지의 예민한 성격을 고려해 나 역시 최대한 마음을 상하지 않게 의견을 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천만의 말씀이라는 표정을 지으시곤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며느리하고 딸하고 요만큼도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는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그날도 난 아버지의 왼쪽 자리에 붙어 앉아 모사꾼 아닌 모사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부지 그건 눈치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눈꼬리를 말아올려 딸은 여전히 아버지 편이라는 걸 말하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엄마랑 다툼이 있어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져 있을 때면 난 바둑판과 바둑알을 챙겨가지고 방에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 다가갔었다.

(아버지는 요즘도 하루 중 많은 시간 온라인 바둑을 두실만큼 바둑을 사랑하신다)

“아부지, 며느리와 딸을 똑같이 생각하는 게 며느리 입장에서 때로 더 폭력적이게 느낄 수도 있어요. 이번 같은 경우엔 오히려 딸보단 며느리라고 생각하시면 어때요. 며느리도 친정아버지라면 티비 볼륨을 좀 줄여달라고 바로 나와서 얘기할 텐데 시아버지니까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팔순 노인의 가치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본인 인생의 질서이고 그것은 인생을 지탱하는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존경한다.

다만, 좀 더 존경받는 어른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하게 된다.

존경은 나이를 통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편을 한쪽에만 몰아두지 않는 태도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