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문자 백 통

사소한 온도

by 윤슬


집안에 검사를 꿈꾸는 조카가 있다.

‘천재형’ 이라기보단 ‘노력형’에 가깝다.

명절에 가족모임이 있을 때도 방에서 나와 인사만 호다닥 하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거실에서 또래의 사촌들이 아무리 소리를 높이고 깔깔대도

목표한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 내다보지 않는 강단 있는 아이다.

조카는 해맑고 순진하고 때로 허당 같은 어수룩한 면도 있지만 집중력에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

‘반전 있는 녀석’이다.


조카의 엄마인 올케는 말수가 적고 잔잔하고 호수처럼 고요한 사람이다.

살갑진 않지만 넘치게 인내심이 있고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를 할 때면

‘외골수’처럼 느껴지는 때는 있었다.

이번에 올케와 조카사이의 기상천외함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이번에 통신사에서 연락이 왔지 뭐예요. 하루에 문자 사용 건수가 백통이 넘는데 사용 중인 거 맞냐구요 ㅎㅎ”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늘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지만 둘의 에피소드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카는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를 엄마의 알람으로 시작하고 끝낸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비타민을 챙겨 먹고

필요에 따라 예약해 놓은 병원에 다녀오고

밥을 먹는 시간과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하는 시간과 그 프로그램까지

요즘은 방학이라서 하루의 알람이 30개 정도지, 학기 중엔 (조카는 기숙사 생활 중이다) 진짜 백통이 넘게 주고 받는다고 했다.


둘의 콜라보는 물론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시간이 부족한 조카를 위해

영어단어를 정리하고 단어장을 만들어 주고 수학 공식을 책상에 붙여주고

사회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함께 밤을 지새우는 환상의 짝꿍이자 더할 나위 없는 친구였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엄마의 과도한 보살핌에 몸서리치겠지만

조카는 대단한 만족감을 표하며 지금도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지금 나의 8할은 엄마가 만들어주신 거라고’


지금 둘 사이는 무척이나 끈끈하고 정상적으로 보인다.

타인의 시선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조카가 성장하는 내내 염려의 눈길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온전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 모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올케의 시간은 집착보단 정성으로 느껴진다.

집착과 정성의 차이는 행동이 아니라, 바라보는 쪽에서 갈리는 게 아닐까.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관계는 설명보다 시간이 더 잘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