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속의집 Sep 07. 2022

움직임이 주는 위로 ● 상처와 몸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나에게 편안한 위치를 찾아보시겠어요?”

그때 진료실에 R씨가 들어왔다. 그녀 역시 뭐가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는 나날이 지속되는 듯했다. 어린 딸이 몸 살로 심하게 아팠고, 그녀도 몸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었다. 이혼하고 난 뒤, 이 모든 상황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의 숨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서둘러 눈물을 닦는 손이 덜덜 떨렸다.


눈물을 닦던 손이 더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자 어깨가 거칠게 들썩거렸다. 그녀는 다시 자신에게 윽박지르기 시작하는 듯했다. 어떤 말로도 진정이 되지 않자, 나는 그녀의 몸에게 가만히 말을 걸고 싶어졌다.


“의자 바닥에 닿아 있는 내 몸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여보시겠어요?"

“골반 위에는 척추가 차곡차곡 탑처럼 쌓아 올려지며 상체가 세워집니다. 흉곽이 좀 더 부드럽게 넓어지려면 내 상체를 골반 위에 어떻게 두면 좋을까요? 상체를 앞뒤로 움직여보며 나에게 편안한 위치를 찾아보시겠어요?”


그녀의 몸이 다시 움직였다. 마치 누가 거칠게 앞뒤로 미는 것 마냥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그녀 혼자 움직이고 있는데, 꼭 누군가가 그녀를 함부로 밀거나 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그녀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그녀가 울며 힘겹게 꺼냈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아동학대의 생존자였다. 그녀의 부모는 자신의 불행을 모두 그녀의 탓으로 돌리며 어린 그녀를 때리고 욕했다. 부모로부터 받았던 학대는 그녀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거칠고 험한 움직임으로 재현되는 듯했다. 명백히 그녀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수없이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왔다.





"자, 이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보세요. 조금만 더 느리고, 천천히, 아주 작고 미세하게 움직여볼까요?" 


그녀가 아까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반과 골반으로부터 뻗어 올라간 척추가 함께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더니 스르륵 멈추었다.


“지금은 좀 어떠세요?”


그녀가 말없이 다시 움직였다. 좀 전보다 더 느릿느릿 부드럽게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가 다시 가만히 멈추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조용히 아기를 재우기 위해 흔들리는 요람처럼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어느새 울음도 멈추었다. 들썩이던 가슴과 어깨도 부드럽게 펴졌다.


아… 선생님, 뭔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요….



무엇이 그녀를 위로할 수 있었을까. 우는 아이를 토닥토닥 만져주며 달래주는 엄마의 움직임, 그것은 섬세하면서도 느릿하고 부드럽다. 우리는 그 따스한 움직임에 위로를 받으며 울음을 멈추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움직임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고 성장한 것은 그녀에게 불운이었다. 처음에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싸우기 직전의 사람처럼 거칠고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의 몸은 늘 묵은 상처와 싸우는 전쟁터와 같았다. 하지만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자 그녀의 몸이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 허휴정, <마음이 힘들면 몸을 살짝 움직입니다> 중에서 https://url.kr/uszyj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