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언제라도 나를 볼 수 있는 유리로 된 집에 살았어요.
하지만 유리로 된 집에서는 나를 버리거나 땅 속으로 나를 숨기기 전에는
어떤 것도 감출 수가 없어요. 그런데 땅 속으로 나를 숨기고 나면
나도 나를 볼 수 없게 되어요.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 Alice Miller 가 만난 한 내담자의 말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검열과 비난에 노출되어 산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어떤 책망이나 비난, 혹은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인정합니다. 즉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자신이 진정 그것을 원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이 말은 좀 더 정확하게 나의 참자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듣기 어려울까요? 나의 참자아가 내면의 감옥에 묻혀버렸기 때문일까요? 내가 누군가로부터 숨어서 땅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나의 참자아는 나 자신도 볼 수 없게 사장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브래드쇼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숨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나의 참자아는 무의식적으로 내면의 감옥에 남아 발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참자아와 대화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밀러는 어두운 땅 속, 즉 무의식 속에 숨어버린 ‘내’가 해방된 후에야 자아는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자존감을 회복한다고 말합니다.
삼십 대 어느 분은 “내가 없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타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더 적극적인 체해요. 둘 다 내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내 모습이 어떤 건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 긴장해 있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도 없고 겉돈다는 느낌이에요.
심리치료사 오크랜더 Violet Oaklander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상태”를 낮은 자존감이라고 말합니다. 변화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자기 자신이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더 긍정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들을 수치심 없이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시나 문학은 우리가 스스로 표현하지 못한 여러 정서, 느낌, 감정을 나의 문제처럼 표현해주고 공감해줍니다. 이런 공감 능력을 동일시 원칙 Iso-Principle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인이며 작가인 도빈스 Stephen Dobyns 도 "시는 사람들 사이에 걸린 창이다. 그 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어둠에 갇혀 살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광대한 세계에서 단절된 혼자가 아니며,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일은 우리의 자존감을 키워줍니다.
가끔 ‘나는 살기 위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유리로 된 집에 살면서 땅 속 깊은 곳에 도망가 숨어버린 나의 목소리, ‘살기 위해 죽어버린’ 내 목소리를 찾아 해방시키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면 시집을 들고 좋아하는 장소에 앉아 마음의 문을 열어보십시오. 그리고 나를 위한 나만의 일기장에 시를 써보십시오. 그렇게 숨은 감정들을 두려움 없이 일기장에 해방시켜보는 것입니다.
문학치유에세이 <내 마음을 만지다> https://c11.kr/bbg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