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00권을 읽으면 생기는 일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제주에서 할머니들과 귤을 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갈 무렵, 내게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1년 동안 제주 삼춘들을 통해 제주어도 배우고, 제주 문화와 음식도 익혔다. 이제 나는 계속 제주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서울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제주에서 살려면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데, 내가 사는 곳은 주변이 온통 귤밭뿐이었다. 마흔을 앞둔 나에게 귤 따는 일 외에 이곳에서 다른 경제 활동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귤을 따기에 나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지인들은 서울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사교육 일을 제주에서 하라고 했지만, 그 일을 계속할 거면 차라리 서울에서 하지 굳이 제주에서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더 늦기 전에 내가 꿈꾸는 나만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돈을 벌어 다시 제주로 내려올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또 서울로 가고, 다시 제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겠지? 그럴 거면 차라리 제주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런 문제는 누구와 상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고민을 나눌 수는 있겠지만,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이렇게 답답할 때면 나는 책을 쌓아두고 몰아 읽는 습관이 있다.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책 속에서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나는 '책 100권 읽기 도전!'을 시작했다.


제주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표선 도서관과 제남 도서관이 있다. 나는 두 도서관을 오가며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책방과 관련된 책들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왜 그 책들을 골라서 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동네책방 관련 책들을 읽으며 '우리 동네에도 이런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생각만 했다.


특히, 노홍철의 '철든 책방'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해왔던 그도 책방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작은 장래희망 같은 꿈이 하나 있었다. 뭐 누구나 소심한 꿈 하나 정도는 가슴에 묻고 사는 그런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꿈. 나이가 들면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며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음식 관련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고, 음식 영화를 보는 것이 나의 힐링 방법이었다. 따뜻한 음식 이야기를 접할 때면 '언젠가 나도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만의 작은 식당이나 카페를 꿈꿨다. 그런데 지금, 동네책방 관련 책을 읽으면서 책방과 음식 사이에서 마음이 시계추마냥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즈음,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제주로 돌아와 귤밭집에 살던 J언니가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육지에 있는 그의 땅이 갑자기 팔렸기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팔리지 않던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어디선가 뿅하고 나타나면서, J언니는 그 돈으로 새 집을 사고 이사를 떠났다.


그렇게 J언니가 떠난 귤밭 안 돌집은 덩그러니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한때 그 집에 살아본 적이 있었기에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집은 보일러 고장으로 난방도 되지 않고, 집안 곳곳을 수리하려면 돈이 꽤 들어갈 견적이 많이 나오는 집이었다.


그런데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법이다. 어느 날 오후, 평소처럼 하루 종일 귤을 따고 집에 돌아와 귤밭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다가 그 빈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을 빌려서 뭔가 해볼까? 그런데 뭘 하지?'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일단 집주인 삼춘께 물어보기로 했다.


다음 날, 나는 귤을 따면서 집주인 삼춘에게 물었다.

"삼춘, 귤밭 안에 있는 그 빈집 저한테 빌려주세요!"

"뭐 하려고?"

"음... 아직은 모르겠는데, 그냥 저한테 빌려주세요."

"뭐 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집을 빌려주냐?"

"아, 그냥 빌려줘요~~~"


나는 막무가내로 조르고 졸라 결국 그 집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아무런 계획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얼굴에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귤밭 속 빈 돌집이 내게로 왔다.


그때 나는 여전히 동네책방 관련 책을 읽고 있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골 동네에도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아니야, 나는 음식 관련된 일을 해야 해!'라는 생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갈등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치! 음식과 관련된 일이 꼭 식당이나 카페일 필요는 없잖아. 음식과 관련된 책방도 음식과 관련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곧바로 나는 인터넷에 '음식책방'을 검색했다. 그런데...... 없었다. 아직은. 그렇다면 내가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귤밭 속 빈 돌집에 음식책방을 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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