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정체성을 찾아가다
책방을 연 지 몇 달 안 됐을 때, 동네 이웃들과 함께 입간판을 제작했다. 그때 나는 그 입간판에 '요리책방'이란 표현을 썼다. SNS에도 요리책방이란 해시태그를 달았다. 당시 나는 요리와 음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리 책방 리뷰를 발견했다. 요리책방인 줄 알고 갔는데 요리책은 별로 없는 책방이라는 글이었다. 나는 '이곳은 요리책방이 아니라 책방 사장이 직접 큐레이션한 '음식이야기' 책들이 있는 곳입니다'라고 답글을 남겼다.
포털사이트 책방 소개에도 '음식이야기' 책들로 큐레이션했다고 쓰여 있는데, 왜 손님은 요리책방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순간, 나의 잘못 대신 핑계를 손님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며칠 밤낮으로 이 리뷰가 마음에 걸리는 거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이 리뷰를 계기로 나는 책방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손님은 왜 이곳이 요리책방이라고 생각했을까? 혹시 다른 손님들도 이곳이 요리책방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 문득, 나는? 나는 이 책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처음으로 돌아가게 됐다. 내가 이 책방을 왜 만들었는지, 무엇으로 이 책방을 채우고 싶었는지, 어떤 책방이길 바랐는지. 그러다 책방 사장인 내가 책방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모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 여기는 내가 위로받으며 좋아했던 음식이야기 책들로 채워진 공간이지. 요리책방이 아니라 음식이야기 책방이야!'
그렇게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또 '음식이야기 책방'이란 단어 대신 '음식책방'이란 해시태그를 쓰기 시작했다. 손님들에게도 "음식이야기 책들로 큐레이션 되어 있어요"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뭔가 여전히 찜찜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음식책방과 음식이야기 책방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때 마침 책방 소개 한 줄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제주 귤밭 안 따뜻한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이라고 써서 보냈다. 이 한 줄을 보내고 나니 확실해졌다.
'그래, 요리책방 아니야. 음식책방도 아니야. 여기는 음식이야기 책방이야!'
음식책방은 음식에 관한 모든 책을 다루는 곳이다. 요리책, 레시피북, 식재료 책 등.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이 공간은 음식에 담긴 이야기가 있는 책들, 소설이나 에세이를 다루는 곳이길 바랐다. 이 미묘하지만 명확한 차이를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책방 사장 스스로가 책방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별점 리뷰를 남겼던 손님이 처음엔 야속했는데, 그분 덕분에 나는 책방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정체성을 찾고 나니 확실히 달라졌다. 손님들에게 책방을 소개할 때 자신감이 생겼고, 책방이 집중해야 하는 것들도 명확해졌다. 이제 더 이상 '요리책방'이나 '음식책방'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 키라네 책부엌은 음식에 담긴 이야기가 있는 책방이라고 확실하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체성을 명확히 찾고도, 여전히 가게 이름인 '책부엌'은 또 다른 종류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여보세요! 거기, 키라네 책부엌이죠?"
"네, 맞습니다."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오늘 저녁 두 명 가능한가요? 메뉴는 뭐가 있죠?"
"아… 죄송한데요, 여기는 식당이 아니고 책방이에요. 음식이야기 책방이요."
"아, 책방이요? 책부엌이라고 해서… 아, 네네. 죄송합니다!"
아직도 종종 가게 이름 때문에 식당인 줄 알고 전화가 온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익숙해지니, 지금은 웃으면서 통화를 마무리한다. 어쩌면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이 애매함이야말로 키라네 책부엌만의 매력이자 정체성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