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조식'이란 단어는 여행지에서 머물던 숙소에서만 존재했다. 평소엔 먹지도 않는 아침식사를 이상하게 여행할 땐 꼭 신청해 먹곤 했다. 여행이란 그런 것 아닌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상을 체험하는 것.
어린 시절 아침밥을 먹고 등교한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닌가, 나만 안 먹고 다녔나?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서인지 직장인이 되어서도 아침을 챙겨 먹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을 땐 직업 특성상(?) 오전 11시쯤, 강의 나가던 학원 근처의 식당에서 아점을 먹고 출근했다.
그게 하루의 시작이자, 첫 번째 식사였다. 이후의 식사는 근무 중 쉬는 시간 10분 만에 먹어야 했기에 식사라기보단 흡입 수준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평소 제대로 먹지 못한 한을 폭식으로 풀곤 했다.
발리에서 살 때는, 우리집 마데가 아침 8시면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왔다. 파파야, 바나나, 용과, 수박, 파인애플이 든 과일 한 접시와 바나나 팬케이크 그리고 발리 커피. 그곳의 계절과 자연을 담은 아침식사를 받은 나는 매번 감탄하면서, 그리고 멍 때리면서 한 시간 넘게 식사를 했다.
배만 채우기 급급했던 내가 한 시간 넘게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발리에서 아침식사가 주는 여유로운 매력에 빠져 살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10분 흡입의 식사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제주에 살게 되면서 다시 발리에서처럼 아침식사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물론 남이 타주는 커피, 남이 해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지만, 이 아침식사만큼은 내 손으로 나를 위해 준비한다. 가능하면 가장 좋아하는 커피잔에 커피를 담고,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한다.
책방 앞 잔디밭 모퉁이에서 자란 애플민트와 로즈마리로 데코레이션까지 한다. 아침식사의 완성은 혼자 잘 차려서 우아하고 여유롭게, 오롯이 나를 위해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새소리 가득한 아침, 귤밭 앞 잔디밭에서 발리에서처럼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책방에서 누리는 이 아침식사의 매력을 책방손님들에게도 누리게 해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황빛 귤이 가득 열리던 가을날 아침, 책방에서 내가 먹던 그대로 '키라네 브런치'를 열었다.
제주감자 크림스프, 단골 빵집 빵에 크림치즈와 직접 만든 무화과잼, 텃밭 채소 샐러드, 그리고 직접 내린 커피. 내가 종종 먹던 그대로 아침식사를 책방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여유롭게 책방 앞 잔디밭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손님들을 보며 알게 된 건, 각자의 속도로 아침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거였다. 누군가는 책방 앞 데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누군가는 귤나무를 바라보며 멍 때리며, 누군가는 커피 향과 함께 따뜻한 아침 햇살에 햇빛 샤워를 즐기면서......
책방 프로그램이 끝난 후 손님들이 내게 말했다. 인스타그램으로만 보던 키라네 브런치를 직접 경험해보니 너무 행복했다고. 아침식사가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이다.
나만 누려왔던 책방 아침의 여유를 나누는 이 시간이, 책방 손님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던 제주의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