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춘, 무시거 머겅 살암수과?

할머니와 함께 제주 음식 쿠킹클래스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제주 시골에서 살다 보니, 제주 향토음식점에서는 팔지 않는, 제주 사람들이 주로 먹는 그들의 일상 음식들을 접할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귤밭에서 삼춘들과 함께 귤을 따던 1년, 점심시간마다 삼춘들과 도시락 반찬을 나눠 먹으며 제주의 사계절이 담긴 음식을 맛보는 행운까지 얻었다.


4월 말쯤 되면 양애순이 올라오는데 그걸 끊어다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배추와 무를 넣어서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한 제주콩국을 먹었다. 한여름에 귤밭 주인 삼춘이 빨간색 바구니를 뒤집어 엎어 그 위에 귤을 으깨서 만들어준 귤주스는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내가 먹었던 이런 귀한 제주 음식들을 책방의 손님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책방 행사 프로그램으로 제주 삼춘과 함께 하는 제주음식 쿠킹클래스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제목은 <삼춘, 무시거 머겅 살암수과?>


이 제목은 옆 동네 토산 삼춘이 지어줬다. '삼춘'은 제주말로 이웃집 어른을 통칭하는 다정한 호칭이다. 평소처럼 삼춘은 지나가다 책방에 들렀고, 난 삼춘께 잔치커피(제주어르신들이 믹스커피를 이르는 말)를 내어드렸다. 삼춘은 책방에 올 때마다 내게 제주사투리를 하나씩 알려주시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키라야, 야채를 뭐하고 하는지 알아?"

"음... 뭐였더라...... 송키?"

"그럼, 부추는?"

"하하, 그건 너무 쉽죠~ 세우리요. 그런데 '삼춘! 옛날에 뭐 먹고 살았어요?'를 제주말로 어떻게 말해요?"

"삼춘, 무시거 머겅 살암수과? 그러지."


그렇게 토산 삼춘이 알려준 그 문장으로 나는 책방 행사 제목을 정했다. 내가 제주에서 가장 신기해했던 제주음식인 '제주콩국'을 가지고 제주 음식 쿠킹클래스를 집주인 삼춘과 함께 해보기로 한거다.


'제주 콩국'은 배추랑 무를 넣고 끓이다가 날콩가루를 풀어서 순두부처럼 만든 제주 토속 겨울음식이다. 간단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날콩가루는 강한 불에 끓이면 넘쳐버리기 일쑤고, 약한 불에 오래 끓이면 콩비린내가 난다. 고수만이 제주 콩국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귀한 제주 음식은 제주 향토음식점에서는 따로 팔지도 않아 육지 사람들은 맛볼 기회가 거의 없다.


쿠킹클래스 재료는 책방 옆 텃밭에서 자란 무와 배추를 뽑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책방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랜선 라이브'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쿠킹클래스 함께할 삼춘이 행사 당일(내일)에 귤 따러 간다고 하는거다.


"앗, 뭐라고요? 안돼요, 안돼! 저랑 약속했잖아요, 갑자기 귤 따러 간다고 하면 어떡해요! 귤은 행사 끝나고 제가 같이 따줄게요!"


삼춘은 내일모레 비 소식이 있다고 내일 얼른 귤을 모두 따야 한다는 거다. 삼춘들에게 귤밭은 삶이기에 그 선택을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오늘 미리 영상을 찍어요." 하고 급하게 책방에서 제주콩국 영상을 찍기로 했다. 서둘러 책방 앞 텃밭에서 배추하나, 무 하나 뽑아와 쿠킹클래스 준비를 했다. 그 옛날 모방송국에서 방영했던 <오늘의 요리>처럼.


삼춘과 나는 둘이 나란히 카메라 앞에 앉았다. 어색하게 카메라를 보며 인사하다가 그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서로 마주보며 웃기를 반복하고 NG를 몇 번씩이나 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물론 다음날 나는 약속했던대로 삼춘과 함께 귤을 따러 귤밭에 갔다. 녹화된 영상으로 제주음식 쿠킹클래스를 보던 사람들은 제주콩국을 신기해했다. 육지에는 제주 콩국과 같은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춘과 나의 케미가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나는 이 쿠킹클래스를 마치며 생각했다. 육지의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숨겨진 진짜 보석 같은 제주 음식을 알게 되면 좋겠다고. 그 연결 지점에 키라네 책부엌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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