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때, 향수는 내게 필수품이었다. 나만의 시그니처 향수가 있을정도로. 외출할 때마다 향수를 뿌리고 집 밖을 나섰다. 마치 외출의 완성은 향수인 것 마냥.
그런데 제주로 이주하게 되면서 내게 향수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딱히 없다. 의도치 않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멀어졌다. 시골에 살다 보니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일도 없었고, 거의 집에만 있었으니까. 외출할 일이 없으니 향수가 필요 없었던 거다.
제주에 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육지 갔다가 제주 집에 오던 날, J언니가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면서 내 방에 로즈마리 한 다발을 꺾어서 걸어놓았더랬다. 방문을 여는 순간 로즈마리향이 가득했다.
제주 우리 집 창문 너머에 아주 커다란 로즈마리 한 그루가 있었다. 인공적인 향에 익숙하게 살던 내가 자연이 주는 향에 처음 빠지기 시작했던 날이었다.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돼 나는 도자기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배우지 못했던 것. 도자기 배우면서 워머를 만들었다.
도자기 선생님이 워머 위에 로즈마리 생잎을 올려놓고 태웠다. 순식간에 공방 안이 로즈마리향으로 가득해졌다. 그때부터 로즈마리는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로즈마리 워머 위에 로즈마리 생잎을 올려놓고 태우면 방안은 금세 은은한 로즈마리향으로 가득 찬다. 이렇게 로즈마리와 늘 함께 하다 보니 향수뿐 아니라 심지어 룸스프레이 향도 거부감이 들 정도다. 가끔 향수를 뒤집어 쓴 듯한 사람 옆을 지나가면 그 향수 냄새가 역겨울 만큼 이제 인공적인 향이 싫어졌다.
얼마 전 집에 돌아오는 길, 지나치는 작은 마을 어딘가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아, 이 향기는? 맞아, 은목서향이야. 제주에서 은목서향이라니!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 은목서를 잔뜩 심어놓았다. 덕분에 마을 전체가 은목서향 가득이다.
서울에 살았으면 알지 못했을 자연이 주는 향을 제주에 살면서 봄에는 귤꽃향에 취하고, 초겨울에는 은목서향에 취한다. 로즈마리향은 일년 내내 함께하며 살고 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향은 확실히 뭔가 어설프다. 그래서일까? 자연이 주는 향은 인공 향으로 대체될 수 없다. 자연의 향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시골 살이는 정말 많은 것들을 내게 알려주고 있다. 향수라는 인공향을 소비했던 삶에서 자연이 주는 향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