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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병원 뺑뺑이

아빠 육아 일기 D+6

by 퇴근은없다

병원 뺑뺑이라는 말이 있다. 응급실이 포화상태라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을 말한다.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디선가는 결국 받아줄 곳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입원 권고


출산 5일 차, 쫑알이의 황달 재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출산한 병원을 퇴원하면서 황달 수치가 조금 높으니 이틀 후 재검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만 해도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황달 수치가 14.7이에요. 보통 15를 넘으면 입원을 고려하는데 이틀간 4 정도 올라서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요. 이대로면 주말 동안 위험할 수 있어서 걱정이 되는데요. 큰 병원으로 입원하시는 게 좋겠어요"


갑작스러운 입원 권고. 방문 가능한 3차 병원 전화번호 리스트를 전달받자마자.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병원에 연락을 했다.


"저희 병원은 남은 베드가 없어요.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이거 남 일이 아니게 되었다.


뺑뺑이 실습


다른 병원으로도 연락해 봤지만 '베드가 없다는 병원'. '이미 진료가 끝났다는 병원'. '응급실로는 연락이 안 되는 병원'은 있었지만 입원가능하니 어서 오라는 병원은 없었다. 입원해야 한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니 장모님이 아는 간호사분이 있으시다며 이런 일 있을 때 연락하라고 하셨다고 알려주셨는데. 어떡해야 하나 발 동동 구르던 입장에서는 입원이 이렇게 연줄을 통해야만 가능한 현실에 착잡한 마음 절반.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 절반이었다. 지금 내 마음이 뭐가 중요한가 바로 그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도착하니 일단 아무것도 먹이지 말고 기다리라 했고, 한 시간쯤 기다려 진찰을 받고서는 입원 가능 여부를 확인하더니 결국 입원은 어렵다는 대답을 받았지만, 꼭 다른 병원 가보시라는 의견을 주셨다. 믿고 있던 '지인 간호사' 님 얘기도 해봤지만 힘이 되어주시지는 못했나 보다.


아직 수치가 입원할 수치는 아니었으니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도 해봤지만, 아내가 임신했을 때의 조기진통 경험에 따르면 이런 일은 괜찮을 거라 믿기보다는 위험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낫다. 우리 선조들은 부정편향을 가진 개체가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했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한다면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큰 일을 막는다. 의사가 주말 동안 위험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내 뒤에는 아직 몸이 회복 중이라 힘들어하는 아내와 울기만 하는 태어난 지 5일 된 신생아가 있었다. 지체할 틈은 없다. 우리는 3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119도 별 수 없다


도착한 병원은 좀 더 규모가 큰 병원이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여기도 신생아 중환자실은 자리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거다. 이대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나 싶었는데. 아기가 너무 작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까지 찾아온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선별진료소에 계시던 분들이 함께 병원을 알아봐 주신다는거다. 마음은 너무 감사했지만 알려주실 수 있는 병원은 벌써 거절당한 병원이자 119에 전화해 보라고 알려주셨다. 119가 이런 일도 해준단다. 나는 이미 병원에 있는데 병원을 알아보기 위해 또 119를 부른다니.


119로 전화를 걸어 "신생아 황달로 응급 입원이 필요한데 받아줄 병원이 없다"고 설명했더니 금방 응급차가 출동했다. 믿음직스러운 구급대원분들이 우리를 응급차에 태우셨고, 그때만 해도 이대로 금방 다른 병원으로 실려갈 줄만 알았다. 그런데 출발은 하지 않고 다시 한참을 병원 알아보기가 시작하는 거다.


이미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병원은 다 알아봤다. 여기저기 연락하시던 구급대원분이 마지막으로 가장 큰 병원인 서울 아산 병원에 연락했다. 자리는 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 정도 수치로는 입원이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자리가 없다거나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기에 입원은 단념해야 했다. 보통 황달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기 어려우니 내일 다시 검사하고 정말 위급하면 다시 병원을 찾아보기로 타협했다. 구급대원분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팁을 몇 가지 주셨다.


1. 병원을 못 찾고 있을 때 119로 전화하면 이번처럼 개인적으로 연락이 어려운 병원을 알아봐 주실 수 있다.

2. 119는 오히려 병원에서 거절이 쉽다. 응급 상황에 직접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면 병원에서도 거절하기 쉽지 않다.

3. 어떤 병원들은 자기 병원의 진료 기록이 있는 환자를 우선 확인한다. 큰 병원에 진료 기록을 미리 만들어두자.


병원 문턱이 이렇게 높다. 우리는 지금 당장 생명이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1분 1초가 아쉬운 순간이라면 어떨까. 우리 비교적 의료 환경이 좋은 수도권에 살고 있는데도 그렇다. 어쩌다 치료받기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위험했던 수치


다음날, 어제 미리 알아봤던 검사가 가능한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했다.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겉으로 봐서는 문제없어 보인다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지만, 보이는 것과 다르게 수치는 18을 넘어섰다. 또 하루 만에 4나 올라간 것이다. "20이 넘으면 뇌손상 위험이 있다"라고 하셨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거다. 다행히 어제는 없다던 자리가 하나 생겨서 입원도 가능했다. 만약 하루 더 늦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도 이 병원에 자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의사의 진단을 따랐을 뿐이다. 과민하게 반응한 것도,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다.


쫑알이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5일간 입원하며 광선치료를 받았고, 하루 15분 면회가 가능했다. 면회를 갈 때마다 자고 있어서 매우 섭섭하기는 했으나 무사히 잘 있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퇴원하기까지 함께 했던 시간만큼이나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집 가까운 병원에 입원해서 안전하게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했다. 아기 키우면 감사할 일도 많다. 황달의 원인은 모유 부족과 자연적 황달이 겹쳐서 생긴 것 같다고 한다. 심각한 질병이나 이상은 없었고 며칠 후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쫑알이 키우며 아픈 날이 많을 거다. 동네 소아과에서 충분한 수준으로만 아팠으면 좋겠는데, 또 큰 병원 가야 한다면 한숨부터 나올 것 같다. 나라에서는 출산율 얘기하며 아기를 낳으라는데, 있는 아이들이나 걱정 없이 병원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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