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분명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는데..이럴 수가!!

by 퇴근은없다

지금은 운이 좋아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지만, 어릴 적 나도 정식으로 글을 연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글의 얼개는 대략 이랬다.


'오늘은 우빈이와 경찰과 도둑을 했다. 참 재미있었다'


대체 누가 일기의 마지막 문장을 '참 재미있었다'라고 쓰라고 가르쳐줬는지 모르겠으나, 매일 같이 '참 재미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일기를 마무리하면,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일기 끝자락에는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혀 돌아왔다. 가끔은 선생님의 댓글이 적혀있기도 했는데 보통은 따뜻한 칭찬의 한마디였다. 나는 이제 막 연재를 시작한 새내기 작가였고, 선생님은 칭찬에 후한 독자였다.


언제나 비슷한 구성, 클리셰 범벅의 연재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꾸준히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다. 나는 일기장 제출이라는 마감에 쫓겨 불성실한 연재를 했지만, 가끔은 '참 재미있었다'라는 말 없이 정성 들여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날은 선생님의 한마디도 더 정성 들여 쓰여있었다.


작가로 활동했던 경험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며칠 전 여자 친구가 이사 준비를 하다가 발견했다며 어릴 적 일기를 보내왔다.


깨알 같이 오늘 잘못한 일에 '동생 실험한 일'이라고 써놨다


투철한 실험 정신의 소유자였던 여자 친구는 동생에게 마시멜로 실험을 하고 말았다. 여자 친구는 동생을 실험한다고만 생각했겠지만, 여자 친구도 동생을 마시멜로 앞에 앉혀두고 방에 들어가서 15분을 참아냈으니 의도한 실험 대상은 아니지만 실험은 성공일지도 모르겠다.


'아 내 동생이 과연 인내심이 있을까.. 설마.. 있겠지?'

읽는 나도 조마조마하다. 빨리 다음 문장을 읽고 싶다. 마지막 문장도 화룡점정이다.


"앗!.. 이런" 분명 여기 마시멜로가 있었는데.. 사라졌다.. 이럴 수가!!

평소 같았으면 참 재미있었다고 일기를 마무리했을 텐데 여자 친구는 '이럴 수가!!'라는 감탄사로 참신하게 일기를 마무리했다. 마시멜로 실험의 놀라웠던 마음을 이미 온전히 전했으니. 굳이 실험 결과를 정리할 필요도 '참 재미있었다'는 클리셰를 반복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앗!.. 이렇게 좋은 글을 쓰다니..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떤 일기를 써도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던 때는 용감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기를 쓰고 싶지 않은 날이면 담백하게 '오늘은 무엇을 했고 참 재미있었다'라고 쓸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커가면서 다른 사람을 이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욕망이 다른 사람을 향한 욕망으로 대체되어 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글을 써왔고,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욕망의 글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을 온전히 적어내야 좋은 글이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야기에서 헛된 교훈을 찾아내려 하고, 독자를 고려한다는 변명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 나는 욕망으로 글을 쓰며, 오히려 좋은 글을 쓰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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