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거제도를 간다고요?"라고 물으면 누구라도 '북쪽 끝에서 남쪽끝까지 가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며 아는 체를 할 것이다. 다들 비행기로 제주도와 일본은 금세 다녀오는데 거제도라면 마음가짐이 사뭇 다른 것이 사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유행에 편승하는 여행 말고마이너 한 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6월은 여행하기 끝내주는 시기다. 나는 마이너 한 여행이 좋다. 이번엔 거제에 다녀왔다.
거제에 가는 여러 루트를 생각해 봤는데 가장 쾌적한 방법은 '버스'였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거제 고현 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하는 프리미엄 버스를 탔다.
프리미엄 버스는 처음이었는데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고 쌩쌩 달리는 편이고, 좌석이 누울 수 있어 편했다. 중간에 휴게실도 들르고, 바깥 풍경도 보다 보면 도착. 다만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가기 어려우니 꼭 예약을 하자. 버스에 내려 허리를 쫙 펴주고 다음 여정을 준비했다. 더 잘 쏘아 다니기 위해 쏘카를 빌렸다.
첫 끼니를 위해 간 곳은 거제 능포항의 새마을회식당. 허름한 간판에서 포스가 느껴진다. 복국이 주 메뉴.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아닌지라 영업이 유동적인 곳인데 다행히 MBTI가 J인 인간답게 미리 전화를 드려 맛볼 수 있었다.
복국을 주문하니 정갈한 한 상에 고등어구이, 지리로 시킨 탕이 나왔다. 복어는 생복을 쓰시는 데 주문이 들어가면 오픈 키친에서 손질하신다. 복국은 깔끔하고 정직한 맛이다. 신선해서 그런지 껍질도 살코기도 더 탱글탱글하다. 현지가 아니면 말이 될 수 없는 가격. 생복 1인분 15,000원이라는 정말 현지 맛집.
든든하게 밥을 먹고 장승포수산물유통센터에 갔다. 신식 건물 4층에 있는 루프탑 카페 장승포 76가 궁금해서다. 화장실에서까지 오션뷰를 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그러나 음료와 다과는 쏘쏘, 널찍한 공간,바다 보면서 멍 때리기에좋았다.
센터 1층에 수산시장 겸 마켓이 있길래 삼천포 대성식품 쥐치포를 구매했다. 일반 쥐포보다 훨씬 비싸긴 한데 어디선가 삼천포 쥐치포가 유명하다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역시나후회 없는 선택. 장당 5천 원인 에르메스 쥐포이므로 지금도 아껴 먹고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거제의 풍경. 대우조선해양의 도시라 그런지, 조선소 때문에 상주인구가 많은지 빽빽하게 올라선 브랜드 아파트들, 그리고 조선소 정문 앞에 즐비한 직원들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눈에 띈다.
묵었던 숙소는 거제 동부면에 있는 금빛고래하우스. 장승포에서 거제를 가로지르면 나오 동부면은 거제의 서쪽인데 옥포나 장승포보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더 한적한 것이 메리트였다.
체크인을 하고 어딜 다녀와볼까 고민하니 사장님께서 가까운 곳에 명사 해수욕장이 있다고 추천해 주셨다. 관광객이 많이 안 찾는 조용하고 한적한 캠핑장이었다. 여긴 7월부터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해수욕장을 개장한다고. 조금 더 늦게 왔으면 댕수욕장에서 뛰노는 댕댕이들을 봤을 텐데.
저녁거리는 회 포장을 해서 펜션에서 먹기로! 도레미가든회식당에서 막회랑 멍게비빔밥을 포장하고 근처 슈퍼에서 간단하게 음료수만 사들고 숙소로 왔다.
뒷집의 강아지가 뛰놀다가 인기척이 들리면 우리 숙소를 지켜본다. 너무 귀엽다. 이번에 묵었던 숙소 주인께서 주얼리 디자이너, 동화책 작가이시기도 했는데 예술가들의 워케이션이 가능한 작업실의 느낌이 가득한 숙소였다. 그래서 귀여운 불가사리 팔찌나 귀걸이 등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수익금은 난민선교 등에 쓰인다.
친구랑 2층에 있는 트윈룸을 쓰긴 했는데 1층에 티브이도, 부엌도 널찍하고, 텃밭의 채소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별하늘 보면서 바비큐 해 먹기에도 최적의 곳이다. 독채라 가족 단위로 오기도 좋을 것 같다. 예약은 링크를 따라가면 된다.
푹 쉬다가 다음 날 체크아웃. 거제도는 왜 이렇게 생수가 저렴할까? 하나로마트에 구경 갔는데 삼다수가 거의 제주도에서 사 먹는 가격인 500원 밖에 안 한다. 화이트라는 생수는 250원.
그리고 계획 없이 흘러들어 간 노지캠핑장이 있던 해수욕장. 뽕뽕 뚫린 구멍에서 게잡이 체험 등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스킬 없이, 도구 없이 무식하게 맨손으로 파보니 이리저리 게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만 요리조리 잘 피해 간다.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 가족과 전남에 임자도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발길 닿는 대로 가서 보고 즐기고, 민박집에서 묵었던 여행이 처음이었던지라 아직도 깊게 인상이 남아있다. 그때도 지금 보는 것 비슷한 미개발된 해변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길에 어느 식당 '병아리 국' 메뉴에 식겁해서 찍었는데 '병아리'는 남해에서 봄철에만 먹을 수 있는'사백어'를 말한다고. 이번에도 사백어를 먹어보려고 했었는데 잡히는 시기보다 조금 늦어서 포기했다.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하지만, 사백어의 아쉬움을 싸악 씻어주는 자연산 회 등장. 바닷가는 아니지만 돌아가기 전 제대로 회를 먹어보려고 옥포중앙시장 개포막썰어횟집에 갔다. 시장 근처 공영주차장이 잘 되어 있어 주차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여기는 바닷가 인근이 아니라 시내 중심에 있는 중앙시장이다. 관광객들이 오는 곳은 아닌지 일요일 낮에 갔는데 시장에 닫힌 상점들이 더 많았다. 요 식당도 낮부터 소주 마시는 테이블 외엔 한적했다.
2인 5만 원짜리 자연산회를 시켰는데 곁들이찬부터 장난이 아니게 나온다. 추억의 메추리알, 찐 감자, 전에 초무침, 홍합탕 그리고 양념 비법이 궁금한 가자미 구이까지. 이름 모를 회가 한 접시 거하게 차려 나온다.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탱글탱글함! 고소함. 막장에 찍어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어떤 회냐고 물어보니 '술뱅이' 등등이라고 하셨는데 이름을 들어도 잘 알지 못했다. 어디서도 먹어보기 힘든 회인 것은 인정! 여기 때문이라도 다시 거제에 가고 싶다.
고현 버스터미널 근처 카페에서 잠깐 쉬다가 에르메스 쥐포를 챙겨 버스에 올랐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휴게소에서 십원빵을 맛보며 끝낸 즐거웠던 거제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