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방산시장에 갔다. 2년 전 상자 목형을 만드는 아저씨를 소개받아 몇 번이나 도매로 상자를 맞췄었다.
50대 후반의 아저씨는 아내와 목형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을지로 4가 방산시장 골목골목을 들어가 오래된 건물의 높고 좁은 계단을 3층까지 오르면 세상에서 가장 낡은, 부부의 작업실이 나온다.
나는 헐어 반짝거리는 3인용 가죽소파에 앉아 아저씨가 시켜주는 다방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의뢰했었다.
뚱하게 커피를 내려놓는 다방 여인의 능숙함이 재밌었고, 세월 묻은 그 작업실의 공기가 좋았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아주 쾌활한 분들인데 사투리를 써서 나에게 마구 말하면 난 마치 영어를 듣듯 단어를 잘 조합해 얼추 예상해서 대답하곤 했다.
아저씨가 작업 중일 땐 나는 아줌마와 신나게 떠들어 댔는데 보통 오늘 헤어가 예쁘시다는 칭찬으로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를 듣다 아저씨는 간간히 추임새를 넣었다. 난 그 모습이 가장 좋았다.
오랜만에 상자를 맞추러 이곳에 다시 왔다.
아저씨는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일 년 만에 만나 뵌 아저씨 얼굴이 너무나 도 반가워 언성이 높아져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내 건강상태나 경기가 안 좋은데 밥은 먹고살고 있냐 같은 따뜻한 안부를 물었다. 새로 맞출 상자 얘기 후에 싸바리 사장님을 소개하여 주신 다며 함께 그쪽 작업실로 향했다.
날씨가 더웠다. 아마도 주말이라 집에서 쉬고 있을 아줌마의 안부를 물었다.
"사모님은 잘 계시죠?"
"아줌마 죽었어."
"네? 장난치지 마시고요."
"계단을 내려서다 갑자기 쓰러지더니, 5일 있다 갔어."
“네?”
"2015년 3월 25일에 죽었어."
"아저씨 어떡해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떡해요 를 반복하다 싸바리 작업실을 대충 구경한 후,
아저씨에게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머리가 아프면 큰 병원에 가라 했다.
난 아저씨의 작업실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새벽 세시 잠이 들기 전에 아줌마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줌마가 나에게 농담을 던졌던 풍경. 속사정이야 모르지만 티격태격해도 늘 붙어 앉아 수다 떨던 두 분의 모습.
사이가 좋아 아름답다 생각 들었던 그때 내 마음.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아저씨에게 감정을 이입한 건가 생각해 보니 아마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 인 것 같았다.
내 머릿속 가장 빼버리고 싶은 단어는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가 아니다. 슬픔이며 끝이다. 행복한 죽음이란 없다. 죽음은 가장 최악인 상황이다.
모두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모두가 살아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