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1)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 중인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by 마차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33살인 지금까지 십수 년째 방황 중이다. 아직 무엇을 이루어낸 건 없더라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경험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먼저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작성해야 하는 것들 중에 ‘장래희망’은 빠지지 않는 항목이었다.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확고한 꿈이 있는 반면, 나는 그것을 작성해야 할 때마다 마치 장래희망을 적으면 그것이 내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신중하고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수차례 바뀌었다. 연예인, 간호사, 작가, 국어선생님, 승무원… 지금 당장 기억나는 직업만 해도 이 정도이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강렬하게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 싶은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동네로 배정되는 인문계에 진학하는 대다수의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학년 전교생 수가 250명밖에 되지 않는 특성화고를 선택했다. 당시 호텔리어나 승무원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나는 ‘관광비즈니스학과’라는 학과 이름에 끌려 실업계 학교에서 특성화고로 바뀐 학교의 1기로 입학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친구에게 ‘나는 승무원이 될 거야!’라고 말을 했고, ‘그럼 나도 승무원이 될래’라고 나를 따라 말했던 친구는 정말 승무원이 되었고 나는 그 길을 포기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돼’라며 현실에 타협하며 소거법으로 꿈들을 포기하고 지우기 시작한 것이 나의 인생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참여한 아시아나 승무원 체험교실에서 우수학생으로 뽑혀보기도 했고, 어쩌면 그 길을 열심히 준비했더라면 그 자리에 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게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허들이 너무 높아 보였다. 전직 승무원이 학교 설명회에 와서 말했던 큰 키, 가지런한 치아, 깨끗한 피부, 일자로 뻗은 다리 등 외적인 자격조건에 나는 아무것도 부합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60 초반대의 작은 키에 심한 덧니, 팔에는 가리기 힘들 정도로 큰 점이 있고, O자 다리를 가진 나는 그 집단에 속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결국 시도도 해보지 않고 빠르게 승무원이라는 꿈을 포기했다.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이 가장 고조된 시기는 바로 대학 진학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전공을 결정해야 학교도 정하고 그에 대한 입시전략을 정할 수 있을 텐데 시작조차 못하는 나로서는 다들 어떻게 저렇게 전공과 학교를 벌써 정해놓은 것인지 부럽고도 한없이 막막한 기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은 놔버렸기 때문에 이공계 계열은 꿈도 꾸지 않았고, 뜬 구름 잡는 기분으로 문과쪽 전공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 또 하고 싶은 직업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임상심리사였다. 알콜중독자인 엄마로 인해 초등학교 때부터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있던 나는 내가 직접 심리치료를 배워서 엄마를 치료해주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엄마에게 심리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돌아온 엄마의 반응은 ‘멍청한 x, 비싼 대학 가는데 돈도 안 되는 그딴 거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따위의 매서운 비난이었다. 그것 말고도 임상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 졸업 후 대학원 졸업은 기본이고 해외연수까지 가야 한다는 글을 보고서는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역시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 목표 없이 꾸역꾸역 수능공부를 했다. 당연히 목표가 없으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고3인데도 방학 내내 컴퓨터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거나, 독서실에서는 공부하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대로면 내 인생은 망했구나’라는 직감이 강하게 왔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가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문제집은 수능 문제집이 아닌 적성검사 문제집이었는데 언어 추리나 수열 추리와 같은 문제들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때는 적성검사가 뭔지도 몰랐는데 일종의 수시 전형으로 학교 내신 점수와 적성검사 점수를 합산해서 입학할 수 있는 제도였다. 모든 학교가 적성검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적성검사로 갈 수 있는 몇 개의 학교가 정해져 있었다.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너 정도 내신성적이면 적성검사를 노려볼만하다’라는 말을 듣고 적성검사까지 1개월 남짓 남은 시기에 적성검사 문제집을 하나 사서 풀어보기 시작했다. 문제집 한 권도 다 풀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수능공부보다는 재미있게 공부했다. 제일 무난해 보이는 경영학과와 행정학과로 경기도에 있는 대학교 2군데, 서울에 있는 대학교 1군데에 지원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적성검사에도 수리 과목이 있는데 나는 수학에 취약해서 수리 쪽은 포기한 상태였고, 나머지 과목에 집중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수리 과목이 제일 중요한 학교였고, 문제를 틀려도 감점되지 않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틀리면 감점되는 시스템이었다. 그 말은 내가 확실하게 아는 문제가 아니면 찍어서 운에 기댈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날, 맨 뒷자리에 배정되어 문제를 풀고 있는데 등 뒤에 서있는 시험감독관이 내 시험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수리 문제는 거의 아는 문제가 없었지만, 못 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것저것 곱하고 더하고 아는 공식 아무거나 넣어보며 열심히 푸는 척을 했고, 확실하지 않은 답들을 OMR카드에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아씨, 망했다’라고 하며 OMR 카드를 제출하는데 빽빽한 내 OMR카드와 달리 듬성듬성 체크되어 있는 다른 수험생들의 OMR카드를 보자 망했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합격자 발표 시기가 왔고, 어느 정도는 기대했던 경기도 대학교 2군데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는 시험 보고 나오자마자 끝났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가 났지만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수능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같은 반 친구가 내 주민등록번호를 집요하게 캐묻더니 혼자 컴퓨터로 가서 나 몰래 시험결과를 확인하고 와서는 나에게 ‘야, 너 xx대학교 합격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거짓말 치지 말라고 했고, 친구는 너가 직접 보라며 나를 컴퓨터 앞으로 데려가서 합격 문구를 보여줬다. ‘합격’을 보자마자 나는 소리를 질렀고, 친구를 껴안으며 축하를 받았다. 수능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에겐 민폐였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생각할 겨를도 없던 나는 다른 반의 친구들에게 찾아가서 자랑하고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모습이 재수 없어 보일만도 한데, 고맙게도 내 친구들은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었다.


합격의 기쁨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xx대학교 합격했어요!’라고 기쁜 목소리로 말을 전하자 전날 술을 마시고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해도 ‘너는 대학을 가야 한다’라고 수도 없이 말했던 엄마지만 막상 대학에 간다고 하니 그 학비에 대한 부담이 먼저 다가왔으리라. 전화를 끊자 기뻤던 마음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어찌 됐든 이 일은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온 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