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 중인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그때는 몰랐다. 유일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대학 합격’이라는 기쁨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만약 지금 누군가 나에게 다시 돌아갈 기회를 줄 테니 대학교를 갈 거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경험해 봤기에 알 수 있는 것이고, 만약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다른 친구들이 수능 준비를 할 동안 나는 대학교에 합격한 기쁨에 취해 있었다. 대학교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수시 합격 모임에도 참가하는 등 나는 무언가 고삐가 풀려있었던 것 같다. 캠퍼스와 동아리, CC에 대한 로망에 가득 찬 채로 시작한 대학 생활은 내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OT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은 이미 정시 모임에서 만나 나를 빼고 모두가 친해져있었고, 처음부터 겉돌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같은 생활을 하면 되니 천천히 친해질 수 있었지만, 대학교는 시간표를 따로 짜서 신청하는 순간 고립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나마 겨우 친해져서 같은 동아리에 들어간 친구는 반수를 할 거라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자퇴를 했고, 공강시간마다 나는 어디를 가야 할지, 오늘 점심은 누구랑 어떻게 때워야 할지가 최대의 고민이었다. (요즘은 혼자 밥 먹는 풍경이 자연스럽지만, 그때는 혼자 밥 먹는 것을 들키는 것이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인문계가 아닌 특성화고 커리큘럼을 거쳐 온 내게 대학교 수업은 따라가기에 너무 벅찼다. 처음 경험해 보는 외국인 교수님이 진행하는 영어회화 수업에, 수포자인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선형대수학 등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수록 대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커졌다. 거기에 더해 정시가 아닌 적성검사로 들어온 사람을 묘하게 차별하는 시선까지 있어 나는 더욱 작아졌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생각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장 즐겁고 설레었던 때로 기억을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때의 기억은 악몽과도 같다.
그렇게 외롭게 학교생활을 하던 중 같은 과 동기와 CC가 되었다. 그때부턴 거의 연애에 빠져 학교 수업은 더더욱 뒷전이 되었고 남자친구와 싸우다가 수업에 늦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시험지에 아무 답도 적지 못해 ‘죄송합니다’를 적고 나오면 시험이 끝나고 교수님이 따로 나에게 연락해서 D받을래? F받을래? 하는 선택권을 줄 정도로 나의 1학년 성적은 정말 참담했다.
대학교를 입학한다고 했을 때부터 엄마의 술주정은 더욱 심해졌다. 등록금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네가 팔자 좋게 대학이나 갈 형편이냐’는 둥,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네가 대학 갔다고 잘난 척이나 하고 있다’는 둥 매일 술을 마시고 매사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머리가 크니 엄마에 대한 반발심이 더욱 커졌고 반항하다가 머리가 다 뽑히고 옷이 찢기고 얼굴에 멍이 든 채로 쫓겨나듯 집을 나오는 일이 한 달에 1~2번 있을 정도로 빈번해졌다. 그쯤 되니 CC였던 남자친구도 나의 가정사를 모두 알게 되었다. 집에서 나와 찜질방에서 며칠을 지내며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군대에 갔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내가 가장 힘들 때 남자친구마저 없어져 버리니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남자친구마저 없어지니 학교를 다니고 싶은 생각이 더더욱 사라졌다. 게다가 이렇게 계속 집을 나와 거리를 전전하게 되는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사치로 느껴졌다. 알바몬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일을 알아보는데 온통 유흥업 구인공고뿐이었고, 그대로 선택권 없이 유흥업에 빠지려고 했을 때 중학교 친구가 나에게 에버랜드를 제안했다. 때마침 구인공고가 떠있었고 곧바로 에버랜드에 지원해서 합격하고 학교에 휴학계를 내러 갔다. 휴학계를 내는데 부모님의 인감도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교 앞 문방구에서 막도장을 파서 찍었는데, 그것을 보고 눈치챈 담당 교수님은 나를 한참 설득했다. 학교 다니기가 힘든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휴학하고 나서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케이스가 적다며, 신중하게 생각해 볼 것을 권유했다. 꼭 다시 학교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휴학계를 내고 나와 만둣국 한 그릇을 먹었다. 돈이 없어 몇 일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친구가 빌려준 돈으로 먹은 만둣국은 눈물날 정도로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