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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라a Oct 18. 2021

의외의 복병

원격수업

 주어진 시간은 10분이다. 그 안에 필요한 재료를 모두 찾아야 한다. 가끔은 쉬운 과제로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이쁘게 정리된 재료들을 찾을 수 있지만 재고가 소진된 재료들을 다시 찾는 순간, 엄마의 등골에선 긴장의 진땀이 흐른다.

 코로나가 지역 확산으로 또다시 비상이다. 아이들의 수업은 격일로 등원하며 원격 수업과 병행하게 되었다. 길지 않은 수업에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다. 그런데, 이 원격 수업은 엄마들의 엉덩이에 불을 놓는다.

 만들기 수업이 있는 날이면 원에서 준비해 준 만들기 재료 외에 다른 재료들을 구해다 놓아야 하는데, 재료도 구하고 사용하는 법도 알려줘야 하고 자유로운 영혼 두찌도 함께 놀아줘야 한다. 개인적으론 거미를 많이 무서워하지만 이럴 땐 거미손이 되고 싶다. 자유로운 손 4개가 더 필요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개.

 언니와 무조건 함께하고 싶은 두찌는 언니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원격 수업의 또 다른 특성인, 각자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에 엄마는 응답해야 한다. 한날은 엘사가 되어야 하고 그 엘사를 무한 모방하는 미키녀석의 요구에도 응답해야 한다. 녀석들, 의사전달에 매우 적극적이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편인데도 수업 시간엔 여유가 없다. 매일, 한결같이 엄마의 엉덩이에는 불이 난다. 오늘은 더불어 친정엄마가 전화가 와서 반갑게 2분 동안 받다가 목에 담까지 결렸다. 이 긴박한 순간의 긴장감을 몸이 알려준다.

 사실 수업이 시작되면, 무엇으로부터 견뎌야 하는 게 몸보다는 정신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수업을 하고 있노라면 아이가 집중하는 태도, 소통하는 방식 등등에 많은 의견을 갖게 된다. 특히 요즘같이-뭐든 잘하는 별아이지만-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힘든 시기에 이러한 태도는 엄마에게 잔소리에 대한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나는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은 엄마인데, 자꾸 알려줘야 할 것 같은, 그래서 말하게 되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 눈에 띄는 것들 중 많은 부분에 눈을 다시 질끈 감는다. 오늘은 이만 잔소리해야지. 잘하는 게 더 많은 아이인데, 오늘의 엄마는 왜 이리 욕심쟁이일까.

 공포의 예고 없는 만들기 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준비해야 할 색종이 띠가 생겼다. 활동 직전 준비물을 알려줘 빠른 움직임으로 거실의 색종이를 가져와 준비를 해두었다. 만들기를 하기엔 문제없겠다. 어랏!! 만들기를 시작하는데,  분명 보라색 색종이가 사진에 있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초록색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 띠는 애벌레를 만드는 것이란다. 초록색 이어야 한다. 애벌레는! 초록색이 어야만 한다!!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소음 축지법으로 다시 거실로 향했다.


초록색이 없다! 초록색만 없다!!! 에릭 칼(Eric Carle) 아저씨의 애벌레는 비록 초록색이지만 그의 멋진 나비에는 파란색도 있다. 부디, 파란색도 받아들여주길.

@Eric carle

 초록색 노! 별아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대체하자는 표정을 가지고 성의껏 웃음을 지어본다(원격 수업 시엔 엄마는 음소거 상태이다). 다행히 받아들여주는 별 아이다. 즐겁게 애벌레를 완성하고 수업을 마친다.

 하아, 오늘 하루도 힘들었다. 원격 수업이 주는 이 긴장감 속에서 오늘 오전도 지나간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마쳤습니다.


아이야, 아이야. 아이들아 아이들아. 그냥 즐겁고 재밌게 오늘을 보내주어 고맙구나. 엄마의 눈으로 잘하고 못하고 나누지 않을게. 그저 웃으며 즐겁게 일분일초를 보내주련.

 수업이 끝났다. 아이를 꼭 안는다. 미안해, 오늘은 엄마가 욕심이 많았나 봐. 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충분히 잘하고 있어. 엄마가 욕심을 많이 내지 않을게. 고마워.

 꼭 안은 그 품의 아이 손이 엄마를 토닥인다. 따뜻한 아이의 손이 엄마를 녹인다. 그렇게 엄마의 하루에 평화로운 따스함이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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