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일, 다시 십자가를 생각하며

예수가 걸어야 했던 길

by 별빛


쇠얀 키에르케고어, 『자기 시험을 위하여』 중에서


그리스도교에서 성 금요일로 지키는 날, 아침에 눈을 떠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대해 묵상했다. 예수의 죽음의 순간들.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고, 예수를 못 박으라고 외치는 유대인 군중 속에서, 뺨을 맞고 채찍질을 당하며 속옷과 겉옷까지 제비뽑기를 당하던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치라고 따지던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사람들. 그리고 끝끝내 못박히신 예수.


가끔 생각해 본다. 어째서 십자가였을까.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방법, 예수가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덜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도록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죽음이어야만 했을까.


목수였던 예수의 생애를 생각해 본다. 서른 살 즈음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 그는 날마다 나무를 다듬었겠지. 어쩌면 죄수들을 매달던 십자가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저주의 십자가. 죄인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천천히 죽어가게 했던 극악의 형벌.


오며 가며 십자가에 달린 죄인들을 보기도 하셨을까.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이 결국은 그 길임을 알면서 '하늘나라가 임했다!'고 외치며 제자들을 품고 병든 자를 고치고 눈 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고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물로 와인을 만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죽은 사람을 살리고 마침내 죽음의 길로 나아갔던 그분은.


서른셋에 십자가에 매달릴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무릎 꿇고 절하면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던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고 결국 그 길을 가던 이의 심정이란 어떠하였을까. 어떻게 그 혹독한 길을 인간 예수에게 걷게 하셨나, 하늘 아버지이신 그 분은. 그리고 어째서 반드시 결단코 십자가였어야 했나.


나무에 달려 사람을 대신해 저주를 당한 이를 기억하고 바라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 그보다 인간의 죄가 심각하게 패역하여 평범한 죽음으로는 도무지 씻길 수가 없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인간이 발명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절하게 죽어가는 길을 보여주셔야만 했던 것일까. 너희의 죄가 이렇게나 심각한 것이라고. 전 인류의 죄를 다 합하여 '중죄'가 된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너의 죄의 삯이라고. 그리고 그 삯이 사망인 것을 똑똑히 보라고.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만큼 부패한 존재가 사람이라고, 그러나 바로 그 사람이 너무 귀해서, 너무 사랑해서, 그 짐을 내가 대신 지기로 한 것이라고. 네가 달렸어야 하는 그 곳에 내가 달린 것이라고. 너를 구해오기 위해서는 이 방법 외에는 결단코 없었다고.


'카리스 아카데미' 출판사 및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시는 이창우 목사님이 얼마 전에 한 대담에서(링크는 글 맨 아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간이 당하는 그 어떤 고난도 결코 예수의 고난에 비견될 수 없다고. 사람은 순교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마저 외면당하셨다고. 그 고통은 그래서 인간이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고난이라고.


십자가에서 부활로 건너가기 전에, 오늘은 그의 삶과 죽음을 충분히 묵상해 본다.


십자가는 죄의 심각함을 드러내지만, 또한 인간이 당하는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신 자리이기도 하리라. 그리스도교의 교리대로라면, 예수는 이미 태초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세상을 함께 창조하셨으며, 어떤 출생과 생애, 죽음을 경험할 것을 미리 알고 세상에 오셨을 것.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비참함과 고통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헤롯의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말 구유에 태어나 나사렛이라는 촌마을에서 '아비'가 누구인가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고 자라, 사랑하는 모든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기 민족에게 고발을 당해 채찍에 맞으며 옷벗김이라는 수치를 당하고 결국에 십자가에 매달리는 삶. 그 어느 누가 이런 삶을 미리 알고 태어나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선택하셨고,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의 잔을 감당하기로 결정하고, 자기의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아마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결정한 일이었으리라.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는 이미 처음과 끝을 알고도 감당하기를 선택하셨을 테니.




봄이 찾아온 땅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사람을 취하게 하고 숲에서는 새들이 종류대로 날으며 지저귄다. 눈을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면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달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너머 헤아리기 어려운 광막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에 때때로 아득해진다. 숨막히게 아름답고 기절할 듯 두려운 공간에서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기적을 찾아나설 필요가 있는가, 도처에 눈길 닿는 곳마다 기적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예수가 있다. 그의 죽음으로 단번에 자유를 얻은 우리가 있다. 신과 인간을 가로막던 휘장을 찢어버린 단 하나이자 최고의 사건이 있다. 인간의 잘못으로 그 죽음의 의미를 얼룩지게 하고 또다른 죄를 짓고 또 지어 예수의 이름을 더럽히고는 있지만.. 그런 우리이기에 더욱 예수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이에게조차 십자가의 길은 낯설고 당혹스러운 길이다. 그 길을 찾는 이가 많을 리 없고, 인기가 있을 리 없다. 안락하고 반짝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그래도 자꾸 돌아간다. 십자가로 돌아간다.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삶의 끝자락이라도 한 터럭이라도 그를 따르고 닮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간다, 매일 나에게는 실망하다가도 매일 십자가로 다시 일어서면서.


https://youtu.be/ea77wkGjhm4

카리스 아카데이 이창우 목사님(출처 : 다마스커스 tv)


https://youtu.be/yQJNitudm8Q

오늘 올라온, 위 영상의 하이라이트 편집본


*이 방송을 통해 키르케고르가 그리스도인이었던 것, 그리고 신학적인 저작을 이토록 많이 남겼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기나긴 방송을 끝까지 듣고 키르케고르의 책 두 권을 주문해서 읽고 있다. 참, 널리 알려진 키르케고르 저작의 제목 『공포와 전율』이 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성경의 메시지를 따른 것이라고.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_빌립보서 2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