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서로]에 가다
최근 연남동으로 꽁지가 빠지게 산책을 다니면서도 그 아랫동네에도 가봐야겠다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주말의 산책길에서 남편이 '저쪽으로도 가볼까?' 해서 무심코 들러본 동네에서 나는 은근하고도 천천히, 그러나 점차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 고즈넉한 동네에 언제 이렇게 조용히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거지, 싶은 것. 연트럴파크 인근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소리치지 않고 고요히 동네에 스며있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지도상으로 연남동에서 남서쪽으로 길 건너편에 있는 동네인데, 이곳을 애칭으로 '끝남동'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행정구역상으로는 연남동+성산동이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지역이다). 발길 닿는 가게에 종종 '끝남동 지도'라고 쓰여진 귀여운 맵이 붙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즐겨쓰는 맵 어플에 사슴책방을 핀해두었더라. 그랬으면서도 이 동네에는 미처 들러볼 생각조차 왜 못했나 싶었다. 사슴책방은 오픈일이 아니라 닫혀 있었지만, 입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반가워서 찍어보았다.
아이들 낳기 전에 남편과 유럽에 여행을 가면 곳곳에 개성 있는 책방과 숍이 늘어선 것을 보고 부러움의 탄식을 지르곤 했었는데. 그게 우리가 언젠가 누리게 될 현실이라고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홍대 인근과 서울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제 지역마다 특색있는 서점이 들어서고 심지어 우도에도 작은 책방이 있다지. 제주야 말할 것도 없고.
사슴책방 말고도 하나 더 핀이 찍혀 있었는데, 바로 <책방서로>였다. 마침 오픈일로 표시되어 있어 골목을 더듬어 찾아가봤다.
와아, 인적이 드문 이 거리에 열려 있는 책방이 너무 반가웠다. 바로 옆 블럭 연남동에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이 동네는 너무나 조용하더라. 조심스럽게 들어선 책방에는 차분한 인상의 남자 책방지기님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보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하나하나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라도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사실 요새는 작은 책방 분위기가 어딜 가도 비슷비슷해지고, 진열된 책들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책방도 현실적인 운영의 문제가 있으니 팔리는 책을 들여야 할 거고, 그런 의미에서 그 또한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어디를 가도 비슷한 책을 만나게 된다면 굳이 이런 책방을 찾아갈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다. 그런 책들은 대형서점에서도 똑같이 팔고 있기 때문.
책방서로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책들이 많아 너무 반가웠다. 가족들과 함께 갔기 때문에 양껏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스르륵 일별하고 한 권을 얼른 챙겨 구입했다.
지기님께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한쪽에는 소설, 한쪽에는 에세이나 인문 서적이 주로 꽂혀 있었다. 생태 관련 서적이나 매거진들도 눈에 띄었다.
책을 구입하고 나왔는데 아들이 갑자기 응아가 마렵다고 하는데 화장실을 찾기가 어려워 다시 책방에 들어가 화장실을 급히 쓸 수 있는지 여쭤봤다. 감사하게도 안내해 주셔서 아들은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지기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아^__^
참, 책방을 언제 오픈하셨는지 여쭤보니 무려 2016년부터시란다. 집에서 멀지 않은데 이제야 처음 와봤다는 것이 또 괜시리 미안해졌다는,,
그렇게 책방서로에서 데려온 책은 이것,
『격자시공: 편않, 4년의 기록』.
출판공동체 '편않'에서 만든 독특한 인터뷰집이다. 출판계를 둘러싼, 뭐랄까 '젊은 고뇌'를 느낄 수 있는 책이랄까. 책을 둘러싼 고민들, 열정, 어떤 체념이나 회의까지도. 즐겁게 읽는 중. :)
요것이 바로 그 끝남동 골목길 지도.
연남동의 조금은 소란한 분위기에 지치셨다면 가끔은 여기도 한번 들러보셔요. 작게 소근거리는 동네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시면 산책길이 조금쯤 더 행복해질 거예요. 조만간 저도 또 한번 들러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