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아름다운 전주 살림책방 이야기
이번 전주여행에서도 전주에 있는 곳곳의 책방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대체 여행을 간 건지 책방투어를 간 건지 책을 사러 간 건지 모를 정도로 요기조기 뽈뽈 이고지며 다녔지요. 그 중에서도 살림책방은 전주 여행에서도 두 번이나 찾은 책방이었어요('유일하게 두 번 찾은'이라고 쓰려다 멈칫 하게 되네요. 이 책방 말고도 한 군데 더 있었습니다. 저도 참.. 이 얘긴 다음에).
살림책방은 전주 천변에 있는 작고 고즈넉한 서점입니다. 책방도 아름다운데, 책방 가는 길이 또 얼마나 힐링이 될 만큼 아름다운지 몰라요.
조금 더 가까이 가 볼까요. 햇살이 너무 밝아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들어가면 이내 환한 책방을 만나게 됩니다.
살림책방 입구. 천변의 나무들처럼 초록초록한 귀여운 간판에 화분들이 사이좋게 놓여 있네요. :)
살림책방 가는 길. 햇살도 바람도 나무도 너무 완벽해서 마치 꿈 꾸듯 걸었습니다. "이것이 행복이라오" 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새삼, 이래서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싶었고요. 전주에서 만난 풍경과 햇살을 가슴에 그득그득 담아두고 싶어요. 그냥 '아름다운 전주'가 아니라, 저에겐 '이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라는 이미지로 다가왔거든요. 오랜만의 여행이라 더욱 그러한가, 긴 겨울 뒤에 만나는 새봄-초여름의 햇살 그 자체가 너무 화사한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여행은 진리입니다.
막 찍어도 풍경이 되는 장소들.
곳곳에 이렇게 2인 또는 4인이 함께 탈 수 있는 작은 4륜차가 다녀요. 곳곳에 대여소도 있고요. 아이들이 한번 타보고 싶어했는데 새삼 아쉬움이 남네요. 딸내미가 타고 싶단 얘기를 마지막 날 숙소 가는 길에 했던 터라 여유가 없었는데, 혹 다음에 전주 들를 일이 있으면 타봐야겠어요(한옥마을이 은근 길어서 매일 걸으려니 다리가 아프긴 하더군요).
짜잔, 책방 내부입니다. 너무 아름답지요. 지기님 센스가 넘치십니다. 작은 공간인데 너무도 알차고도 아름답게 꾸며 두셨어요. 작은 책방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왠지 지기님 시선이 신경도 쓰이고 해서 오래 머물기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데, 이곳은 어쩐지 마음도 편하고 계속 머물고 싶어지더라고요. 저희 말고도 책방을 오가는 손님도 많았고요. 영화제 기간이라 그런지 외국인 손님들도 다녀가시더군요.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 작은 공간이 이토록 멋지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얼까'를 골똘히 생각해볼 만큼 저에겐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같은 공간이라도 매만지는 사람에 따라 다른 분위기와 정취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고요.
갖추고 있는 책들도 너무(x100) 좋았습니다(자꾸 호들갑 떨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좋은 건 못 숨기겠어요 >_<). 좋은 책이 많아서 고르는 것도 참 힘들었답니다.
나무로 프레임을 짜넣은 작은 창과 화분도 참 아름답지요. 한옥 건물과 어울리는 멋진 인테리어. 선별해서 놓은 그림들도 귀엽고 아기자기합니다.
자꾸자꾸 꺼내 읽고 머물고 싶던 서가. 책을 이쪽저쪽 찬찬히 둘러보는데 어쩐지 낯익은 제목들이 눈에 띕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책들, 애독하는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오는 책들... 하마터면 "혹시 지기님 크리스천이신가요" 하고 물을 뻔 했는데 왠지 그렇게 묻기에도 민망한 내공의 리스트들이라 질문을 삼켰습니다. 예전에 찾았던 양평 <책보고가게>, 김포 <동네책빵괜찮아>에도 신학서적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 중 <동네책빵괜찮아>는 목회자분이 운영한다고 알고 있고요.
교회가 대형화되고 세속화되면서 목회자나 성도들 사이에 고민과 회의가 많아지고, 이러한 시대 속에 새로운 형태의 교회들이 태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가정교회, 평신도교회, 그리고 이렇게 목회자분들이 투잡 혹은 멀티플 잡을 뛰시면서(소위 교회에서는 이를 두고 '텐트메이킹'이라고도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졌던 직업이기도 해서 여기에서 따와서 이르는 말이지요) 목회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거든요.
왠지 촉이 와서(?) 숙소에 와 찾아보니 과연, 살림책방의 지기님도 목회자님이셨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네요. 어쩐지... 목회자님께 "혹시 크리스천이세요?" 하고 물었다면 그 얼마나 민망한 질문이었을까 식은땀이 흐릅니다. 이건 마치 천문학 교수님께 "우주 좋아하세요?"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묻지 않은 저를 칭찬합니다..(이건 아닌가)
http://naver.me/G0f16Fh4
이 기사를 보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님 이야기는 뒤에서 좀더 하고요, 이곳 살림책방에는 인기초절정의 '하녹이'도 살고 있습니다. 다시 봐도 아고 귀여움이 철철 넘쳐납니다. 하녹이는 유기견이었다고 해요. 데려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얼마나 정성으로 돌보셨는지 아이가 윤기가 흐르고 정이 넘칩니다.
하녹이에게 빠진 아이들. 이후 다시 사진을 보니 어맛, 지기님께서 책방 안에서 아이들을 찍고 계셨네요. ㅎㅎ 살림책방 인스타 계정도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놀러가 보셔요 :)
하녹이 러버가 된 우리 아이들. 살림책방과 하녹이는 함께 생각이 날 것 같네요.
자자,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살림책방을 또 찾게 되었습니다. (왠지 한 번 더 가고싶어지긴 했어요) 그러니까, 하루는 영화제가 한창인 전주돔 인근에 주차를 했다가, 전주한옥마을 공영주차장으로 옮겨 주차를 하려 했는데 우와 주차 줄이 너무너무너무 길어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는 상태인 겁니다. 그래서 인근 노상 주차장을 찾아 한참을 더 가서 겨우 주차를 했지요. 거기가 전주향교 근처여서 향교에 들렀다가, 그곳이 천변과 연결되어 다시금 천변에 있는 살림책방에 또 들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첫날 더 많은 책을 사고 싶었지만 어깨가 아파 더 고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던 진정한 책덕후의 실상이랄까요)
천변길을 또 걷습니다. 나중에 지기님께 들으니 여기가 나름 전주에서 핫한 곳이라 젊은 친구들이 맥주 하나 들고 와서 앉아서 한 잔 하면서 이야기나누도 놀다 가기도 한다네요. 여름밤 전주 천변에서의 맥주타임도 참 운치 있겠어요.
햇살과 나무와 바람과.. 아니다 이 날은 무척 더웠어요. 땀이 뚝뚝 떨어지던 한여름 날씨 같았던 그런 날. 이 날은 2+2로 따로 떨어져 다녔습니다. 아들은 아빠와, 딸은 엄마와. (아들이 오락실 인형뽑기+아빠랑 메뚜기 잡기에 빠져 있었거든요....... 오 아들...)
힐링의 기운 가득한 천길을 따라 다시 당도했습니다.
다시 봐도 반갑고 또 와도 설레는 곳이네요!
잊고 싶지 않아 자꾸자꾸 찍어봅니다.
반겨주던 입구도 그대로고요.
들어가서 한참을 또 책을 골랐습니다. 딸내미는 또 하녹이 보고 싶다고 해서 지기님이 안마당에 있던 하녹이 또 데려와 주시고.. 근데 딸은 왠지 혼자서는 부끄러워서 잘 다가가지를 못했지만.
그날은 책방 안에서도 더워서 땀을 흘려가며 또 책들을 골랐습니다. 어머나, 그런데 지기님 자리 뒤편으로 시크릿 공간이 숨어 있었어요! 어떤 젊은 남자분들 둘이서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 보고 딸아이가 말해줘서 알았지요!
두근두근, 사진으로 다시 봐도 설레는 공간이네요. 어쩜 이리 오밀조밀하게도 꾸며두셨단 말입니까+_+ 저같은 사람 설레게... 꺄아 내적 탄성을 내지르며 아이와 함께 구경했어요.
작은 소품과 문구들이 반겨주는 공간입니다. 계단으로 조금 아래로 내려가야 해요.
바깥으로 작은 창도 나 있고요. 디퓨저와 귀여운 카드들, 공간을 비추는 조명도 아름답습니다. (요 디퓨저도 집으로 데려왔어요)
옆으로 눈을 돌려보면,
마스킹테이프와 노트. 그리고 작은 조명.
애정하는 제로퍼제로의 그림이 반갑습니다.
딸도 여기서 냥이 마스킹테이프를 하나 골랐어요.
책과 굿즈를 한아름 계산하며 지기님께 여쭈었습니다. 목회에 대한 이야기, 책방에 대한 대화를 잠시 나누었어요. 책방이 너무 아름답고 책들이 좋아서 떠나기 아쉽다는 말씀도 드렸어요.
주일에는 이곳이 예배의 장소가 된다고 합니다. 기사에서도 책방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린다고 읽었어요. 목회자가 멀리 단상에서 설교하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동그란 모임..의 교회는 또 어떤 분위기일까요. 아마 초대교회도 이런 모임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 눈빛, 함께 먹었던 음식과 걸었던 길에 대한 이야기들. 각자의 실수와 실패,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았을까요.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여 앉아 믿음과 슬픔에 대하여, 기쁨과 눈물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살림책방에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고 나누는 광경을 그려보니 어쩐지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누리는 것만큼 잃어버린 것도 참 많아졌지요.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그러나, 그럼에도, 무엇이 참되고 진실한 것인가, 참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이들도 많아졌음을 보게 됩니다.
살림책방의 지기님이자 목회자님도 그런 고민 속에서 이런 책방을 여신 것이겠지요. 여행지에서 이런저런 삶의 모습들을 만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할까, 교직을 떠난 이후에 펼쳐질 삶은 어떠해야 할까..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눈 맑고 서글서글한 웃음이 참 훈훈하셨던 지기님의 표정과 따뜻한 말투가 생각납니다. 그런 삶의 자락들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전주에 가면 살림책방, 꼭 한번 들러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