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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우 Oct 20. 2023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앞장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기치 않게 주목받는 것을 내키지 않는다. 다수가 있는 자리에서는 꼭 해야 할 말만 하는 편이다. ‘이 말을 할걸’ 한 적은 있어도, ‘이 말을 하지 말걸’ 한 적은 거의 없다. 회의에서도 꼭 필요한 말만 한다. 준비하지 않은 공식적인 발언을 하기 전에는 심장이 마구 쿵쾅거린다. 먼저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동조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좀 더 편한 사람, 이라고 나를 규정해 왔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변했는지, 또는 상황이 그렇게 나를 만들었는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두터워진 걸까, 자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여러 모임이나 회의, 공식적인 자리 등을 가지며 연습이 되었나, 마음이 단단해져 용기가 생겼나, 이 모든 것 때문일 수 있겠지만 실은‘더 이상 못 참겠다’에 가까웠다. 이미 물이 한가득 담긴 컵에 물 한 방울만 더 해지면 흘러넘치기 직전인 상태, 팔팔 끓고 있는 물에다 가루를 흩뿌려버리면 더 높은 온도에서 부글부글 끓게 만들어버릴 상태, 이미 온갖 균열이 되어있는 데에다 단 한 방이면 파사삭 부서지고 으스러지기 직전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온통 말이 안 되고, 부당하고, 어이없고, 기가 막히며, 부조리한 것들 투성이었다. 모르고 살거나, 알아도 외면할 수 있겠지만, 이미 알고 난 이후에는 알기 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내 일터고, 생계에 닿아있는 나의 일이고, 내 과거고, 현재고, 미래며, 나의 삶 그 자체라면. 그것을 모른척하는 것은 결국에 나를 버리는 일이다. 나를 죽이는 일이다.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일이고 의미 없이 겨우 살아지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진짜 제발 개인의 노력, 긍정, 희망 같은 거 개나 줘버리라지!!! 외치고 싶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인간보다 나은 개들에게는 무조건 좋은 것들만 줘야 한다.


  7월 중순 이후로 격주로 집회에 나가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글을 쓰고, 동료들과 생각을 나누려 애썼다. 후원을 하고, 모임에도 나갔다. 같은 직종이 아닌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 어디서부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도, 간략하게라도 상황을 나누려 했다. 인터뷰에도 응하고, 필요한 청원들에 동의했다. 회사 안에서도 할 수 있는 한 뭐라도 해보려 했다. 어떻게든 연대하고 싶었다. 돌아가신 선생님께 대한 알게 모를 죄책감과 슬픔과 추모의 시간들이었다. 돌아가신 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했던 이유는 그 가슴 아픈 죽음이 헛되이 지워지거나 잊혀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나 스스로에게도, 누군가에게도 말해주고 싶었다. 어딘가에라도 목소리가 가닿는다면, 그렇게 아주 작게라도 미약한 것들이 모여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힘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다.


  9월 공교육 멈춤의 날도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다. 교육부에서는 징계, 엄벌로 협박을 일삼고 있었다. 대다수의 현장 교사들은 수업일수에 지장이 없게 하며 최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한 ‘재량휴업일’ 지정으로 해보려 했으나, 이마저도 교육부는 그럴 경우 해당 학교장 징계라는 공문으로 겁박했다. 교장, 교감이라는 관리자들은 다수가 보신주의자들이었다. 재량휴업일로 할 경우 징계라는 말에, 휴업일을 거두고, 그 어떤 대책조차도 내세울 수 없다고 했다. 대책을 세우는 것 자체가 사전에 행동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되어 무서워 벌벌 떠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어떤 교장들은 과연 얼마나 교사들이 실제로 행동하겠느냐며 망언을 해대거나, 승인을 해주지 않거나, 낙인찍기식으로 협박을 하며 앞장섰다.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평소 교육, 학교, 학생, 아이들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는 자들이 교사들이 어떻게든 뭐 좀 해보겠다고 할 때“교육권, 학습권, 아이들”이라는 워딩을 앞장 세워서 방패막이 삼는 것이었다. 그건 전혀 교육적으로 애쓸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매일매일 아이들과 살고 생활하고 가르치고 배우며 고군분투하는 현장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게 교육부, 교육지원청, 관리자들이 할 말이 아니지 않나?


  학교에서는 회의가 거듭되었다. 고작 월 7만 원 더 받으며 온갖 행정업무와 잡무를 더 하고 있는 노예일 뿐 무늬만‘부장’ 직함을 달고 있는 나는 불필요한 회의들에 정말 신물이 났다. 무엇보다 교육부에 징계 공문에 ‘불법, 불법, 불법!’을 덩달아 신나서 외치고 있는 저 관리자가 환멸스러웠다. 당시 일반전세버스를 이용한 체험학습은 불법이라는 법제처의 해석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겠다는 교육부 공문에 대한 안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회의였다. 마음이 마구 쿵쾅댔다. 체험학습 불법이어도 교사가 책임지고 가야 하는지, 가지 않아야 하는지, 교육부와 교육지원청이 다른 대책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의견이 오갔다. 관리자와 일부 부장들은 가지 않을 경우 보호자 민원의 소지가 있으며, 불법이어도 교사가 책임지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도대체 교사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보호받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정책권자들과 관리자들은 책임을 늘 떠넘기며 아무것도 책임도 보호도 해주지 않으면서 왜 교사는 늘 모든 책임을 죽기 살기로 져야 하는가, 할 말을 해야겠다. 그래서 의견을 냈다. “체험학습 전세버스는 현재 법적 해석에 따라 불법임에도 강행을 해야 하고, 개인이 자신의 사유로 연가 병가 등 휴가를 내는 것을 정당한 권리임에도 불법이라 하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해 관리자분들의 입장은 그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단 말인 겁니까?”


  공교육 멈춤의 날 이후에 교육부가 징계를 철회한 이후에도, 그리고 어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었던 이후에도, 교육지원청은 또 교사들을 괴롭혔다. 이번에는 9월 4일과 관련해서 소명자료를 확인해 처리하고, 수업‘보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사가 학기 중에 병가/연가를 사용하기도 어려운 시스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에 대해 보강을 하는 선례는 없다. 명백히 노동자에 대한 기본권리 침해이자, 교육구성원에 대한 갈라 치기이며, 괴롭히겠다는 폭력적 선언이다. 이번에도 민원과 공문에 벌벌 떠는 관리자는 자신의 안위에 그 어떤 해가 될까, 자꾸만 불필요한 회의를 소집했다.


  저런 사람이 관리자라니, 저런 사람이 소위 선배 교사라니. 안 그래도 수많은 업무로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이 말도 안 되는 불필요한 공문에 또 휘둘려 시간 낭비하는 회의까지 해야 하나? 어떤 부장들은 이에 돌려 말하고 우회하며 달래주는 뉘앙스를 취했고, 어떤 부장들은 말하지 않기를 택했다. 또 어떤 이들은 그에 맞춰 보강을 어떤 식으로 할지 대안을 냈다. 의문이 들었다.‘아니 도대체 이 회의를 왜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보강을 왜 해야 하는가’ 보강을 할지 안 할지를 먼저 정해야지, 왜 보강을 해야 한다고 해놓고 말도 안 되는 대책을 내세우고 앉아있나. 가슴이 또 마구마구 뛰었다.


  교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두 눈을 직면하고 말했다. “공교육 멈춤의 날 전에,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여러 가지 대책 중 하나로 단축수업에 대한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분명 관리자 입장에서 그 어떤 조사나 대책도 사전에 세울 수 없으며, 정상수업과 급식도 기존 시정표대로 모두 실시하고 학생들을 하교시킨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운영되었습니다. 그럼 정상학사운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까, 도대체 왜 보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말은 해야겠다. 그러니까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 는 말에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 입 닫으라, 는 말에 순응하고 싶지 않다. 교사를 쓰다 낡으면 버리는 부품처럼 여기는 교육부의 행태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이 나라에 교육이 없다, 고 말하겠다. 그나마 이 정도 버티는 것이 교사들의 선의에 의해 굴러오고 있다, 고 말하겠다. 더 이상 옛날 야만적인 시대에 교사로부터 상처받았던 일들과 비교육을 넘어 폭력적인 시대에 있었던 과거의 일들로 현재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아이들과 가르치고 배우려고 교사를 하고 싶지, 더 이상 수많은 행정업무와 잡무로 수업과 아이들을 등한시하고 싶지 않다. 수업 하나도 안 중요해, 아이들 교육하는 거 하나도 안 중요하니 민원이나 고소 안 받게 서비스나 잘해, 열심히 수업연구하지 마 아무도 안 알아줘, 그럴 시간에 행정업무를 더 해, 보호자들이 노동할 동안 아이들을 싸게 손쉽게 편한 방법으로 봉사해,라는 수많은 메시지를 주는 공교육 시스템에 대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교육할 수 없는 구조와 환경에 대해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생각이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있는 사람, 조용히 있는 사람, 그래서 그 가만한 조용함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훗날 돌아봤을 때 ‘이 말을 할 걸’을 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나는 나에 관한, 내 일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낼 만큼 떳떳하다. 지난 10년 가까이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교사가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들까지 번아웃에 가깝게 일해왔으며, 많은 교사들이 그리했다. 그러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직면하고 할 말을 하겠다. 무엇보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애정을 갖고 더 애쓰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었던 꿈이 담긴 일이기 때문이다. 동료가 더 이상 죽거나, 힘들어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게 내 일이 될 수도 있을 복불복에 기대어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할 수 있는 것’을 작게라도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늘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아이들 앞에 선 어른의 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이들 앞에서 과연 이게 어른이고, 이게 이 세상이고, 이게 너희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글 이호우  ㅣ 표지그림  김환기, '십만 개의 점 04-VI-73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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