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아이 중학교 때 일이다.
내가 주방에 가느라 그린이 방 문 옆을 지나가면 그린이는 컴퓨터를 하다 말고 후닥닥 컴퓨터 화면을 끈다. 그러고는 의자에 천연덕스럽게 앉아 딴청을 피운다. 뭐하다 후닥닥 화면을 끄냐고 물으면
“아니야 별 것 아니야.” 혹은
“화면만 끈 게 아니라 이제 그만 하려고 컴퓨터를 끈 거야.” 하는 말로 둘러댄다.
뭘까? 남자아이라면 야동을 보려니 하겠지만 여중딩이 야동을 볼 리는 없고... 아닌가?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방 안으로 들어가 화면을 켜서 방금 전까지 뭘 보고 있었는지 확인한 적이 없다. 컴퓨터로 뭘 보든 아이 마음이고,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일이기에 화면을 후다닥 껐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오히려 그게 뭔지 모르지만 엄마가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것은 안 보는 것으로 알아달라는 무언의 동의라고 생각했다. 또한 엄마 앞에서 대놓고 보지 않는 게 고마웠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우리들 방(오빠들 방과 언니들 방)에 한 번도 들어오신 적이 없다. 언제나 우리에게 볼 일이 있으시면 항상 마루에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어릴 때 만화책을 많이 빌려 봤는데 아버지가 그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으시다가 어떤 아이가 만화책에 나온 것을 따라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뉴스가 나오는 바람에 아버지가 그 이후로 만화책 금지령을 내리셨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만화책을 빌려봤다.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판단했고, 만화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끊을 수 없었다. 물론 그전처럼 대놓고 빌려보지는 못했고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술수를 써야 했지만 아버지가 그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우리 방을 들여다보지 않으셨고, 만화책 금지에 관한 이야기도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으셨다. 한 번 이야기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여 주신 자식에 대한 인격의 존중이었으리라. 내가 우리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따라 할 수 있어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