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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Aug 27. 2020

왕싸가지 따님

작은 아이 방이 주방과 가까워 지나갈 때마다 지저분한 방이 눈에 거슬렸다.


 “방이 너무 지저분하네. 방 좀 치워라.”

 “귀찮아요.”
(뭐라고?? 죄송한 마음은 하나도 없이... 귀찮다고라고라?)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방을 볼 때마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려고 해. 그러니 방 좀 치워.”

 “그럼 쳐다보지 마세요.”

(방이 어질러진 탓이 아니라 방을 쳐다본 탓이라고? 으이그 이걸 가만 놔둬야 하나?)


 “안 보려고 해도 지나갈 때마다 방문으로 저렇게 보이는데 어떻게 안 볼 수가 있니?”

 “그럼 방문을 닫으면 되겠네요."

(여기서 한 번 더 꼭지가 돌 뻔했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고 여기서 내 뜻만 주장하면 '꼰대'가 될 뿐이다.)


 “그래 그게 좋겠다. 문을 닫아라”

 “머리가 아픈 분이 엄마니 엄마가 닫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언제였더라? 전에 딸을 상담받게 하려는 분께 내가  말과 비슷하다. 딸의 진로에 대해 딸과 이견이 있었고  때문에 갈등을 겪다가 딸에게 상담을 받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신 분께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상담은 괴로운 사람이 받는 거니 상담은 딸이 아닌 본인이 받으시는  좋겠다고. 내가 파트타임으로 나가던 학교의 선생님인데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은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평소의 인품과 젊잖은 언행으로 내가 존경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분위기 상으로는(딸은 절대로 상담에 가지 않을 테니)  딸에 대한 그분의 고민을 들어드리고 충분히 공감해드렸으면 흐뭇한 그림이 되었겠지만 나는  길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께 직접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문제니 네가 고쳐라는 말로 받아들일  있었지만 그분은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돌고 돌아 내게로 왔다. 네가 괴로우니 방문은 네가 닫아라.)


 “그래, 그러자. 그런데 도대체 네 방은 언제 치울 거냐?”

 “내가 치우고 싶을 때요. 내 방에 대해 신경 쓰면 머리 아프니 신경 쓰지 마세요.”

(효녀 나셨네.)


 “그렇게 엄마 걱정하는 놈이 청소 좀 하면 어디 덧나나?”

 “아이참 알아서 치운다고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어따대고 승질이야? 엄마도 참을 만큼 참았거든?)


 “방 청소도 안 하면서 뭘 잘했다고 짜증을 내? 이럴 땐 좀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면 좋겠다.”

 "엄마...."

 "왜!"

 “제 대답은 제가 골라요.”


막판 이 대답에 나는 빵 터졌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아이는 가고 있었다. 그 여정이 신선해서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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