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책기둥」
문보영 시인의 「책기둥」을 감싸고 있는 기묘한 아우라는 시집을 여는 서문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콘페니우르겐의 임신 기간은/사십 년으로/지구에서 가장 길다 그런데/콘페니우르겐의 평균수명이/이십칠 년인 것은/하나의 수수께끼다” 이 문장 자체가 필자에겐 하나의 수수께끼같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콘페니우르겐을 검색해보았지만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비슷한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어찌 보면 기괴한 정도의 상상력이다. 아직 시가 낯선 필자에게 이 시집은 단순히 어린이의 장난에 불과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도리어 시집이 주는 하나의 자신감 역시 그려진다.
특히 이 시집에선 ‘신’과 ‘책’같은 거시적이고 관념적인 매체에 대한 부정이 돋보인다. 또한 신을 아주 메타적으로 보거나, “책을 탁, 덮는다”는 구절을 보며 책을 그다지 중요치 않게 본다거나. 또는 시에 대한 메타적 해석이 돋보인다. “시는 관측된 현상에 대한 설명을 오직 자연적인 원인에서만 찾는다”거나, 과학적 사실을 불규칙하게 나열해 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알아보긴 무척이나 어려운 시어들의 향연이다.
이제야 고하자면, 필자는 아직 이 시인의 시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나열된 이미지들과 엉터리로 띄워진 행간이 마치 하나의 오류인 것처럼 필자의 관념체계를 뒤흔든다. 그래서 이 시를 이해하길 포기했다. 대신 시를 하나의 이미지 그 자체로 보고 시인이 그려둔 그만의 세계를 관람하길 택했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리털파카신」에서 신이 파카에 삐져나온 오리털을 뽑는 모습이 그려진다. 신이 오리털을 뽑을 때마다 영안실에서, 안방에서, 혹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스쳐간다. 참으로 잔혹한 그림이다.
여전히 필자는 시를 모르겠다. 맥락 없는 단어들의 나열은 아직도 스스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번 학기 초, 필자는 시가 미웠다. 그런 마음을 이 「책기둥」을 통해 한 걸음 극복하고자 한다. 시를 알기 위해선 이미지를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시는 시인이 전시한 이미지를 그대로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