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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영 Apr 25. 2024

마음이 뾰족한 날

고슴도치보다는 쿼카로 살자

유난히 마음이 뾰족한 날이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리’ 생각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그야말로 성난 고슴도치 같은 오늘의 나는 모든 게 싫을 뿐이다.




이럴 때는 남편이 하는 자잘한 잘못들, 평소 같으면 ‘잘하는 게 많으니까 이 정도는 내가 봐줄 수 있지’ 하는 것들도 신경을 긁는다. 쌀통에 쌀 좀 채워 달랬더니 컵을 안 빼고 그냥 붓는 등 집안일에는 도무지 뇌를 쓰지 않는 그런 류의 행동들?



먹보 공주 다민이의 먹을 거 타령도 거슬린다. 밥 먹자마자 간식을 찾고, 부엌에서 기척만 나도 “엄마, 뭐 먹어? 나 뭐 줄 거야?” 궁금해하고, 실컷 밥 차려주니 “이게 다야, 엄마?” 묻고. 가리는 거 없이 뭐든지 맛있게 잘 먹어서 예쁜 아이지만, 오늘은 이조차도 ‘지겨운 식탐’으로 느껴진다.



가장 힘든 건 역시 주원이다.

담임 선생님마저 “He thinks before he does”라고 말씀하실 만큼 생각이 많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 눈치도 빠른,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다. 밖에서 더할 나위 없는 모범생으로 온갖 촉수를 곤두세우고 생활하다 보니 집에 오면 지쳐서 짜증을 부리는 일도 잦다.


엄마이기 이전에 예민한 인간인 나로서 이런 돼도 않는 짜증을 받아주기가 쉽지 않지만, 또 주원이의 이런 모습이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므로 꾹 참는다. ‘모범생으로 사는 건 너무 긴장되고 고단해. 마음이 뾰족해진 나를 엄마라도 푸근하게 받아주면 안 될까?’ 모르긴 몰라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참지 않아도 될 만큼 이해가 되고,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러울 때도 많다.


하지만 어제오늘 마음이 뾰족한 나에게는 그게 참 어렵다.




내일, 아니면 모레, 적어도 주말 전에는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져야지 별 수 있나?

밉다고 싫다고 밥을 안 줄 수가 있나, 빨랫감이 수북이 쌓여가는데 빨래도 안 할 수가 있나, 애가 소풍 가는데 김밥을 안 싸줄 수가 있나.


내가 고슴도치든 쿼카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쿼카로 사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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